인간의 야만성,본성에 대한 성찰『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 』
인간의 야만성,본성에 대한 성찰『 파리대왕 Lord of the files 』
윌리엄 골딩의 작품 『파리대왕 Lord of the files』, 제목만 봐서는 도저히 무슨 책인지 알 수 없다. 파리대왕. 마치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처럼 동물세계에서 파리가 대왕이 된다는 이야기인가 싶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한건 대학교 1학년 철학시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후회가 되긴하지만, 이작품을 음미하기에는 아직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성숙하지 못했다. 영화로 파리대왕을 처음 봤는데 우선 영화 나이가 내 나이보다 많았다. 배경은 전부 흑백이고 주인공들은 어린 꼬마아이들이 전부였다. 너무 오래된 영화의 구성에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우선 보긴 봤는데 원시인들 마냥 생활하다 구출되다는 이야기일 뿐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린 꼬마들의 잔인함과 야만성이 머리에 남았던지 책으로 다시 접해보고 싶었다.
세상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건 귀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이말에 동감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 든다. <파리대왕>은 무인도에 표류된 어린 꼬마들을 앞에 내세운다. "인간의 야만성은 다른 동물에 비해 약한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을 책이 말해준다. "전혀 그렇지 않아. 숨겨져 있을 뿐이야."라고 말이다. 섬에 떨어진 소년들의 나이는 기껏해야 13세정도, 5~7세 가량 꼬마들도 있다. 순수함의 상징인 어린아이들이 주인공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은 섬에서 생존하기 위해 처음에는 협력적이었다. 천식이 있으며 몸집이 통통해 행동이 느린 소년 Piggy와 사회적 규범,가치 도덕성을 내재한 소년 랄프를 중심으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회의도 가진다. 그들은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소라고동을 들고 이야기를 한다. 소라고동은 민주적 절차의 상징물로써 작용한다.
그것도 잠시 한쪽에서 옷까지 맞춰 입은 한무리의 소년들이 나타난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잭. 그는 매우 날렵하고 다른 아이에 비해 육체적으로도 성숙해있으며 힘이 쎄다. 잭의 무리는 자신들은 사냥조가 되어 먹을 것을 구하겠다고 하며 나선다. 그들 역시 사냥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한번 맛들인 피의 사냥은 그들을 점점 갈아먹고 있었다.
결국 잭의무리와 랄프의 무리로 나눠지는데 잭의 무리는 일찍이 사냥을 하고 먹을거리를 얻는다. 하지만 랄프 무리는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랄프는 잭의 무리에게 먹을 것을 얻으러 간다. 잭은 먹을것을 주는 대신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점점 권력에 찌들어간다. 사냥감의 분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할분배의 목적이 형평성에서 벗어나 권력체제를 더 확고히 하는데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소라고동은 더이상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고대사회에서 지배계급이 생겨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잉여생산물이란 물질적 인것이 보이지 않는 계급과 권력이라는 비물질적인 것을 양산하는 것과 다를바 없어 보인다. 권력이 강해 짐에 따라 잭은 강압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불을 피우기 위해 Piggy(피기)의 안경을 강제로 빼앗는다. 어떤 합의나 절차 없이 그냥 순수 권력의 힘으로 약탈한다. 돼지소년 piggy에게는 생존의 수단이고, 섬 전체에서는 하나 뿐인 문물이고, 문물로서 경제적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강탈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고 없는 사람의 것을 그것 마저 없애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이전에 학습하지 않았던 야만적인 모습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잭의무리 그들은 스스로 가상의적을 상정하고 옷과 얼굴을 똑같이 맞춰나간다. 특히 스스로 인간의 얼굴을 포기하고, 진흙과 다양한 색들을 이용해 알아볼 수 없는 괴물의 얼굴을 선택한다. 같이 지내던 친구도 죽이고도 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순수해서 금방 잊고 웃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야만적 본성에 따라 괴롭힘, 공포를 즐기는 웃음인 것일까? 더욱놀랑누 것은 이들의 행동이 극닥적 민족주의인 파시즘과 나치즘과 비슷해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무리의 우수성에 빠져 타인들을 배척하고 그 과정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자신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특정 구호들을 만들어 내는 모습과 말이다. 또한 이런 모습은 한국사회에서도 보인다.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들을 일어났다고 하면서 가상의 적을 만들어 내어 위기감을 조성하고 불안감에 떨게 만들며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들의 목적인 표를 얻기위한 공포 정치와 너무 유사하다.
각설하고 , 결국 잭의 무리는 더 이상 살인에 대한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piggy와 랄프는 방해물인 것일 뿐이다. 그들을 죽이기 위해 섬 전체를 불태우며 수색을 한다. 랄프는 있는 힘껏 살려고 몸서리친다. 죽지않기 위해 최대한 은밀하게 멀리 도망치다 해안가에 닿는다. 그 해안가에는 멀리서 섬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 도착한 해군들이 있었다. 어른인 해군들 말이다.
작가가 왜 어린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을까? 한번 쯤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설정함으로써 많은 생각들을 던져 준다. 순수함의 상징인 어린아이들이 내면에 잠자고 있는 포악하고, 흉측한 가면을 꺼내 스스로 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써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도록 한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책에서 파리대왕의 얼굴을 빌려 이런말을 한다.
"너도 알지? 나는 너희들의 일부분이야. 아주 밀접하게 가까이 있는 일부분이야. 왜 모든것이 잘 못돌아가고 이모양으로 되었는가 하면, 그건 모두 다 나때문이야"
잭의 무리가 그토록 찾던 검고 무섭게 생긴 적은 바로 여기 있었다. 우리 근처에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섬안에 있는 모두가 적은 저멀리 어딘가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공격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괴물은 우리 자신이라는걸 몰랐다.
내 안에도 윙윙 거리며 날개를 펼칠 기회를 엿보는 파리가 있을 것이다. 언제든 불안,공포,좌절,고통,분노 등의 감정을 엿보며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파리가 날개를 다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철학적이면서 마주하기 싫은 불편함을 감수해내 한층 성장시킨다. 사람들은 좋은게 좋다고 생각마저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긍정적인 사고라고 포괄지어 범주화 시켜 그 범위안에 숨겨진 진실을 애써 감춘다. 알면 알수록, 진실에 다가갈수록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 거짓임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한번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불편함에 의한 감정이 클수록 성장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파리대왕>은 앞에서 말한것 처럼 인간의 본성, 숨겨진 야만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필자 역시 숨겨진 야만성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읽어 냈지만, 혹자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 낸 야만성이라는 설명을 하기도 한다. 어쨋거나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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