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저)

Posted by 티쳐리
2017. 10. 28. 06:00 리뷰/책 리뷰

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저)




기욤 뮈소의 <지금 이 순간>은 24라는 기묘하고도 오묘한 숫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24라는 숫자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하루는 24시간이며, 동양에서 태양의 위치에 따라 계절을 구분하는 절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24개다.
"24 방위 바람이 불고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 소설속 등장하는 등대에 새겨진 문장이다.

'아서코스텔로'는 아버지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등대를 찾아 간다. 그는 아버지가 신신당부하시며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당부했던 지하실문을 열어본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닥치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머리에 칼이 박히는 듯한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일어나보니 팬티차림에 성당안이었다. 시간은 1년이 지난 후였다. 등대의 저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금 이 순간

주인공 '아서코스텔로' 그의 이야기 속에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그는 속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매년 단 하루 밖에 살지 못하지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잊혀지기 쉬우나 정작 본인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간직해야만 하는 시간의 늪에 빠진것이다. 본능을 자극하며 밀려오는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문을 여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룬 셈이었다. 머리가 터질듯한 두통을 견뎌 일어난뒤 다시 정신을 잃기 전까지 그에게는 24시간이 주어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되돌릴 방법을 찾을 시간은 단 하루밖에 없던 것이다. 다시 두통이 밀려 올때면 1년이 지난 후였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일년을 살게 되는 꼴이었다. 매 순간마다 모든것이 만신창이만치 변하게 되는 상황에서 아서는 희망을 놓지 않고 노력했다. 

아서는 할아버지를 찾아 기묘한 이야기를 듣게됐다. 할아버지 자신도 24년간 등대의 저주에 걸렸었다고 말이다. 등대의 저주를 푸는 방법은 그저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라는 허무한 결말을 알게된다. 아서는 우선 할아버지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그런 과정에서 다시 정신을 잃는다. 깨어나 보니 어느 낯선 여자의 방이었다. 아서와 리자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다. 

아서는 리자가 자살을 시도하는 현장에 우연히 깨어나면서 그녀를 구하게된다. 그녀와 함께 할아버지도 구출하게 된다. 점점 그는 그녀에게 빠져들엇다. 그녀 역시 그에게 빠져든다.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시간에 일어날 때마다 겪는 아픔, 눈을 떴을 때의 막막함,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휩쌓인 삶을 버티게 하는 존재를 만난것이다. 할아버지는 애초에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며 둘 사이를 방해하지만 어떤 수작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은 깊어져만 갔다. 리자로 인해 아서코스텔로의 삶은 또 한번 변하게 됐다. 아서는 그녀에 대한 사랑이 짙어짐에 따라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소중한 사람이 생긴 만큼 시간을 붙잡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사랑을 할때 항상 붙어 있으면서도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에 아쉬운데 1년에 단 하루 밖에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자신이 기억하기에는 바로 어제인데 상대방은 1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상태라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자신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건들을 아니 겪지도 않은 사건들을 상대는 겪고 나에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쳐야 한다는 사실에도 가슴아프다. 

아서로서는 자신의 고통이 너무나 큰 나머지 운명에 대한 원망의 화살은 엉뚱하게도 리자를 향하게 됐다. 매년 사라지는 아서를 두고 힘들기는 리자역시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였는데 말이다. 아서는 할아버지 말대로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믿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의구심은 커지고 자기 의심의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관계는 틀어졌다. 마지막 정신을 잃기전 아서는 딸 소피아를 만난다. 그리고 믿지못할 저주의 진실을 마주한다. 

1년에 단 하루밖에 살지 못하지만 사랑을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을 아서와 리자를 보며 다시 느꼈다. 
"사랑이란 지도와 나침반 없이 떠나는 모양이며 신중해지는 순간 길을 잃는다."는 문구가 둘의 사랑을 너무 적절히 표현해준다. 사랑의 크기를 어떻게 측정할 수가 있을까. 사랑한 시간이 길다고해서 깊다는 뜻이 아니라는걸 제목에서도 말해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한순간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외치고 있다.
"지금 이순간을 살자는것..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느라 지금 이순간의 행복을 내팽개치지 말자는것. 지금이순간. 우리에게 모든 걱정과 우려는 시간낭비였다. 우린 가장 가치있고 즐거운일, 즉 사랑하는 일에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우린 서로의 몸에 매달려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미래를 걱정하는 시간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지금에 대한 집착을 가져야 한다고 속삭인다.

보이지 않는다고 불안에 떨며 두려워하며 사랑마저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날선 목소리로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요구한다. 아서와 리자의 이야기가 무르 익어갈수록 안타까움이 커진다. 이런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이 사랑하고 싶음을 말해주는 것의 방증은 아닐까 싶다.

픽션이란 거짓말이 감추고 있는 진실이다

등대가 만들어낸 저주의 비밀은 놀라웠다. 줄거리속에 숨겨진 반전은 한여름에 닭살을 돋게 할 만큼 충분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진정으로 발견할 수 있다'라고  얘기하던 사실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유명작가가 되면서 소설에 대한 집착이 생긴 남자가 있었다. 그는 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점점 서재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내로부터 '사라지는 남자'라는 별명까지 얻게됐다. 어느날 , 남자는 가족들과 등대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기대도 잠시 기대감은 의구심으로 변했고, 곧 싸움으로 번졌다. 아내는 화가난 나머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빗길속으로 사라졌다. 빗길을 달리던 차는 사고가 나고 아들과 딸은 세상을 떠나게 됐다. 남자는 자신의 의의심으로 자식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빠져 스스로 정신병원행을 택했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글들을 써나갔다. 

마지막 시간여행날, 아서는 자신의 진실들을 마주했다. 아내가 바람났다는 의심으로부터 행복을 스스로 깨트리고 불행을 선택한 결과였다. 너무나 불행하고 괴로운 나머지 스스로 구속과 억압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런 통제역시 자신의 슬픔을 이겨내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글을 통해 자신의 절망적인 슬픔을 이야기로 만들었다. 이야기 속에는 실제 삶의 인물들이 재구성 되었고, 진심어린 사랑이 담겨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제목에서 그의 회한이 느껴진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을 잡지 못한채 눈물흘리고 그리워하고 있는 절절함이 밀려온다. 
소설 어귀에 나오는 "픽션이란 거짓말이 감추고 있는 진실이다"는 문장보다 이 소설을 적절하게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은 아서가 가장 잡고 싶었던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을 통해서 표출함으로써 슬픔을 승화시키고 있다. 그의 절실했던 마음들을 보여주는 여러 문구들이 이소설을 읽는 묘미를 더해준다. 
"삶은 결국 우리가 지닌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폭력적인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것들은 마치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버리니 말이다."
"중요한건 기쁜일이 언제 우리를 찾아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가장 열렬한 기쁨을 맛보곤 한다. 기쁨은 큰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비참한 순간에 갑자기 기쁨을 맛보았다면 그 비참함 마저도 그리워진다."
"당신에게 주어진 삶을 단단히 붙잡길 바랍니다. 당신 자신에게 인생의 바퀴는 생각보다 빠르게 굴러간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가뜩이나 짧기에 굳이 서둘러 끝낼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소설속 아서가 하고 싶은 말들을 기욤 뮈소는 소설밖에 문구들을 통해 은연중에 내던지고 있다. 당장 우리가 신경써야 할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생기지도 않은 일들을 향해 보이지 않는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미래는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오지만, 흘러가는 지금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고통도 모두 짧은 지금 이 순간에 달려있다고 상기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