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다큐프라임 『 불멸의 진시황2부 』

Posted by 티쳐리
2017. 10. 9. 00:03 리뷰/영화 리뷰

EBS다큐프라임 『 불멸의 진시황2부 』






거대한 대륙안에서 이어지는 오래된 전설, 가장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있다.

지금으로 부터 약 2200년 전 중국 대륙의 역사상 가장 걸출한 영웅이 등장한다. 대단한 정복자였던 이 영웅은 수많은 전쟁을 이끌고, 몇번의 걸친 암살 위혐에 불구하고 중국 대통일을 이뤄낸다.그리하여 자신을 시 활제라 부르도록 명하는데, 그는 법과 문자 군현제를 통해 오늘날 중국의 근본을 닦았다. 하지만 역사는 그의 편이 아니였다. 사람을 생매장하고 만지장성 화릉건설등 무리한 토목건설을 일으킨 희대의 폭군으로 기록된다.무엇이 진실일까?

지금 까지도 논란이 끝이지 않는 황제의 생애. 기록에 의하면 그는 죽어서 까지 불멸의 세계를 꿈꿧다고 한다. 이처럼 살아서는 영웅으로 죽어서는 신화가 되길 원했던 사람이 있다.과연 그는 어떻게 통일 제국의 황제가 됐을가? 그가 꿈꿧던 불멸의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이였을까? 


1974년 7월 21일 중국 언론이 깜짝놀랄만한 뉴스를 전했다. 중국의 고대 도시 서안에서 대량의 토용이 발굴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이발굴에 참여했던 사람이 말하기를 "별마용이 발견되었을때 다들 놀랐습니다. 중국을 놀라게하고 세계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발굴소식은 세계로 뻗어나갔고 고고학자들은 경악했다.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고대 중국이야기가 어쩌면 사실일지 모른다는 설렘때문이었다. 사람네의 생각은 저마다 달랐다. 누구는 신상이라고 어느 부인네는 조각상에 절을 하며 복을 빌기도했습니다. 

또다른 사람은 이건 미신이라고 하며 부숴버리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이많은 토용을 묻었을까? 발굴과함께 많은 무기들이 출토되었지만 고고학자들의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의문을 해결해줄 단서하나가 발견되었다. 그 단서는 바로 극이라는 무기였다. 낫처럼 생긴 이 무기는 적을 끌어당겨 베거나 찌를때 사용했다. 이 무기에는 글하나가 쓰여있었다. '상방여불위가 만들다' 상방은 진시황의 재상이라는 뜻인데 그래서 문자상으로도 병마용갱이 진시황시대의것이고 다른시대의 것이 될 수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불위는 앞서 1부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정(진시황)이 친정하기 전까지 섭정하던 권세가였다. 그제야 발굴자들은 이 토용들이 진시황시대 얼굴이라는것을 알고, 이것은 신화와 전설이 눈앞에 드러낸 순간이었다. 토용은 살아있는 듯, 피가흐르는듯 생생했다. 지하무덤에서 나온 토용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자극하고, 잃어버린 시대로의 여행을 꿈꾸게했다.


기원전287년 진나라에 새로운 왕이 등극한다. 왕의나이 13살로 영정이라는 어린왕이 훗날 바로 진시황이다. 왕위에올라 내린 첫 명령은 자신의 능을 만들라였다. 중국고대 전통에 따라 황제가 즉위하고 그 이듬해 그의 묘역을 만들기 시작한것이다. 진시황은 조나라의 볼모로 잡혀가 갖은 고난과 역경속에서 지내왔다. 언제 죽을지 몰랐던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한 마음이 누구 보다 컸고, 죽음에 있어서도 어릴 적부터 수 없이 생각해 온 것들이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진시황릉의 위치는 실크로드의 관문인 서안이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수도를 삼았던 고대도시이기도 하다. 진시황의 명을 받은 신하들은 이 도시 한족에 지상최대의 릉을 건설해낸다. 동서의 길이가 345미터 남북350미터 높이 55미터 거대한 봉분. 병마용은 그 봉분에서 1.5키로 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1호병마용갱, 멀리떨어져서 병마용갱이 진시황의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처음에는. 하지만 여불위라는 글씨등이 나타나면서 병마용갱 토용들이 진시황의 사후세계를 호위하는 무사들임을 알게된다. 도자기 병사와 도자기 말이 6000여점으로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지하군대. 역사적으로 중용한의미. 연구하던 당시의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복장에 대해 많은 의미를 가지고있다. 매우 사실적으로 만들어져있다. 그들의 모양새는 마치 실제 사람 못지 않았고 손의 모양도 갖가지 복장도 다양했다. 


병마용갱을 통해 진나라 군영의 위용을 알 수있다.1호를 살펴보면 앞쪽에는 궁병들이 3영횡대 정면을 응시 , 뒤로는 명령만 떨어지면 돌격대원들이 진영을 갖춰 38열 종대로 통로에 서있다. 맨 바깥쪽은 적을 주시하는 경계병들이 있으며 완벽한 짜임새를 갖춘 보병군단임을 확인 할 수있다. 병사들은 각자 자신들의 임무에 맡는 무기들을 가지고 있었고, 저마다 손모양이 다달랐다 . 매우 세심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각각 돌격대원들은 창과 극. 병사들이 멀리 있는 쇠뇌와 청동화살을 들고 있었느데 고고학자들을 놀라게 한것은 따로 있는데 바로 2천년 넘게 땅속에 묻혔지만 녹슬지 않고 날이서있는 칼이다. 어떻게 그들은 녹슬지 않는 무기를 만들었을까?

아직까지도 무기가 날카롭고 광이나는 이유는 산화크롬과 관계가 있었다. 산화크롬의 주요역할은 녹스는 것을 방지해준다는 것이다. 크롬분말을 이용한 금속표면 열처리 기술인 크로마이징의 기술만 두고 봤을때 중국이 서양 국가보다 2천년 정도 빠르다고 한다. (크로마이징 기술은 독일같은 경우1930년대 미국은 1950년대에 개발됐기 때문이다. 크로마이징은 정확한배합과 1400도의 고온이 없이는 불가능한 기술인데 진나라는 오래전 부터 정하고 첨단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기술을 바탕으로 진나라는 최첨단의 무기를 만들고 주변의 다른나라들보다 훨씬 뛰어난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보병군단인 1호갱 주변에서는 2호갱 3호갱이 차례로 발견됐다. 먼저2호갱은 길이가 124미터 남북98미터로 축구장 3배면적 크기에 해당하며, 부장품 내용도 1호갱과는 달랐다. 2호병마용갱은 복합형 군대였다. 1호 병마용과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했다. 1호갱이 보병중심의 군대였다면 2호갱은 오늘날의 전차와 포병군대임이 밝혀졌다.앞쪽에는 쇠뇌(석궁)병이 배치됐고 그 뒤 통로마다 기동력을 가춘 기병대가 포진했다. 옆에는 중형전차와 보병으로 구성된 혼성부대가 있었다.네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에는 갑옷입은 병사3명씩 배치되있었다. 2호갱은 쇠뇌병 기병 전차병 입체형 군진이었던 것이다. 또한 특이한 점은 2호갱에서 발견된 말에서는 중요한 무늬가 발견된다. 바로 안장이다. 말 안장은 한나라때 처음 사용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병마용갱의 발견을 통해 정설이 뒤짚어진 것이다. 이미 진나라때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안장을 통해 기동력과 전투력을 향상시켜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쇠뇌를 살펴보면 방아뭉치가 모두 같은 규격으로 만들어졌다.즉 표준화되있어서 고장나는 순간 바로 고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병마용갱에서 발견된 물건들만 봐도 당시에 표준화란느 개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마치 경제적분야에서 도량형, 화폐의 통일 처럼) 군사적인 차원에서도 군사무기의 표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역시 군사력을 대폭적으로 증강시켜 전쟁의 승리에 한 몫을 했던것이다. 가령 전쟁터에서 무기가 고장나거나 잃어버리는 경우에도 그와 같은 것으로 대체하여 전투가능했기에 일정 수준의 군사 전투력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굉장히 현대적인 시스템이지 않을 수 없다. 군대에서 총기 부품이 손상된 경우, 다른 부품으로 재빨리 교체하는 현대 군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다음으로 3호갱은 1,2호갱을 총괄하는 지휘부 였다. 고대의 전투에서 지휘부가 따로 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지휘관은 직접 전쟁에 나갈필요가 없다. 충분히 자신의 전략을 통해서 부대를 지휘할 수 있습니다. 킹덤 애니메이션을 보면 알 수 있다. 조나라의 뛰어난 총사령관 이목이 있다. 그는 수많은 전쟁터에 출전한 장군출신이지만 실제 전투에서 앞서 싸우지 않는다. 풍부한 경험과 지략을 통해 전 군대를 총괄하여 움직여 승리할 뿐이다. 이에 맞서 다양한 병법, 최첨단무기를 가지고있던 진나라역시 비슷했다.

이들의 싸움방식은 지휘부의 명령이 떨어지면 움직인다. 마치 멀리서 아군의 말을 움직여 승부를 보는 장기 한판인것이다. 예를들면 먼저 쇠뇌병이 전진하여 청동화살을 쏴대고 적이 혼란에 빠지면 뒤에있던 보병주력이 전방으로 진격하고 기병과 전차병은 빠른 기동력을 이용하여 적진의 좌우 측면을 이동한다. 이렇게 적을 포위하면서 적을 섬멸 시킨다.이런 군사력과 병법을 통해 전쟁을 시작한지 10년도 되지않아 주변6개국을 멸망시키고 대통일을 이룬다. 하지만 현세에서 중국을 대통일한 진시황도 아직 못이룬 것이 있었다. 바로 죽음을 정복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멸의 생을 꿈꾼다. 조나라의 볼모로 잡혀간 경험을 했을때부터 시작해서 갖은 암살계획이 난무한 상황에 처한 진시황 역시 자신이 날로 노쇠함에 따라 불안감이 더욱 커졌을 것이다. 현세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를 끝까지 손에 쥐고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신화전설적인 이야기로 서왕모에게서 불멸의 약을 얻어오려고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렇기에 더욱 죽은 뒤 삶에서도 현재와 같이 웅장하고 거대한 권력을 쥐고 싶었던 진시황은 연인원70만명이 동원된 국가 프로젝트로서 황릉을 작업한다. 무려 38년의 시간이 걸린다. 역사문헌 사기에 나와있는 穿三泉(천삼천)은 묘실을 만들기위해 땅을 파서 3층 지하수층을 관통했다는 뜻으로 이것을 근거로 진시황릉의 크기는 지하28~29미터 내지 30미터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있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진시황의 무덤은 30미터 기록에 달하고 청동으로 애워싸 지하수의 유입을 막았다고 한다. 그리고 땅을 돋우고 벽을쌓고 50미터가 넘는 봉분을 쌓았으니 실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갖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혹자는 이로인해 잔인무도한 폭군이라 말하고 혹자는 현재까지 이르는 중국 천하의 시스템을 만든 위대한 영웅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느것이 진실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면만 바라보고 단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될 것은 확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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