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 몰래카메라『 트루먼 쇼 』

Posted by 티쳐리
2017. 10. 10. 06:00 리뷰/영화 리뷰

 지상 최대 몰래카메라, 사기극 영화『 트루먼 쇼 the TRUMAN show』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흔하게 듣는 말이 있다. "당신 생각 만큼 세상은 당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세상은 당신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맞는말이다. 하지만 내가 자기중심적인게 아니라 세상이 내중심적이었다면 믿겠는가? 정말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어떨까? 내가 이세상의 주인공인 기분으로 살아간다면 환상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포스터를 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건 LIVE라는 단어와 함께 행복감에 젖은 남자가 곤히 자는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날짜는 1만909일이라 써져있다. 'The Truman Show', on the air, unaware아라고 쓰여진것을 보아 몰래 카메라의 프로그램의 일종인가 보다. 그리고 거대한 스크린 아래 여러나라 국기들이 세워져있고, 그 뒤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관중들이 마치 스크린을 지켜보는 모습이다. 작게나마 화면속에서 날아올라 밖으로 나가는 새한마리가 보인다.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트루먼만 모르게 세상은 트루먼 중심으로 돌아간다. 트루먼은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며 메릴과 결혼하고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어릴적 아버지가 익사하는 것을 보고 물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그런데 어느날 익사한 줄 알았던 아버지가 나타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대학생때는 사랑했던 실비아는 트루먼에게 진실을 이야기 해주려고 하지만 그럴때마다 방해꾼들이 나타나 결국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트루먼은 그녀가 피지섬으로 갔다는 이야기만 듣고 항상 지도와 사진을 보며 피지로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고 하면 주변에서 무슨일이 일어나서든지 방해한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믿지 못하고 자신만의 탈출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긴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공포와 감정이란 감정을 많이 느꼈다. 먼저 아버지의 출세욕으로 인한 돌방상황에서 부모 자식간 사랑보다 출세욕이 먼저였다. 실제 아버지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마지막까지 다시 출현하는 것에 웃고 만족해하며 트루먼을 찾아 나가서는 장면은 너무 섬뜩했다. 

트루먼은 어릴적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넘어서 탈출에 시도한다. 그런 트루먼의 탈출은 지상최대의 쇼킹한 사건이었다. 보통 사람이 실종되면 간절히 찾길 바라는 마음을 가졌겠지만, 제발 트루먼을 찾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솟구쳤다.  관중들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트루먼 세계속 배우들도 모두 놀랐다. 수 많은 배우인 군중들이 스크럽을 짜고 트루먼을 찾아나설때는 공포 그 자체였다. 마치 나치즘에서 유태인을 색출하는 듯하게 철저하고 위협적으로 보였다.

수 많은 관중들에게 트루먼은 그저 유희거리 그 자체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흡사 동물원의 철창 속 동물을 언제 어디서든지 TV속에서 자유롭게 관찰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관중과 배우 그 누구도 트루먼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들끼리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었던 어떤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절대 다수의 횡포에 의한 극 소수인 개인의 피해를 나몰라라 하듯이 말이다. 

시청자들과 배우인 그들이 진실을 알고도 외면하고 그저 그 안에서 즐길 수 있었던 이유들을 몇가지 생각해본다. 먼저 경제적 이익이 있었을 것이다. 트루먼쇼를 구상하하고 실행하면서 많은 일자리들이 창출되었다. 두번째로는 정서적 측면에서 결속력이다. 이것은 흔히 '나만 아니면된다'는 마음에서 나오고 이미 타켓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끼리 유대감이 높아지고 소속감이 생겨버린 것이다. 셋째, 심리적만족감이다. 평범한 삶에서 그들은 자극적이고 자신들의 삶에 조금 더 웃음을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던 찰나에 생소하고 신박한 LIVE쇼를 알게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굉장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 즐거움이 그들을 안에서건 밖에서건 뭉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느꼈던 것은 감정들이 진실될 수 있구나는 점에서 놀랐다. 설령 그것이 환경통제가 이끌어낸 억지 감정일지라도 말이다.


트루먼은 결국 피지섬을 찾아 떠나게 되고, 마지막 관문이었던 폭풍우가 끝난다. 그리고 세계의 끝과 마주한다, 그 세상끝을 트루먼은 "Good afternoon, Good evening, Good morning" 라고 외치며 진실과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모든 Show는 끝이난다. 이런 사기쇼의 결말은 그저 시청자들에게 무엇이었을까? 그렇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하나의 최장편 드라마가 끝났을 뿐이었다. 방송이 끝이나고 아쉬움과 감동이라는 여운도 잠시 그들은 "다른데는 뭐하지?" "이제는 뭘보지?"라며 새로운 유희거리를 찾아 TV채널을 돌릴 뿐이다.


탈출이 일어나기 까지 트루먼의 처절한 몸부림, 소리없는 아우성 연출등이 슬픔과 감동을 준다. 특히나 자신이 믿고 있던 것들에 대한 배신감, 자신이 알던 세계가 무너지는 절망 속에서 "AND THEN WHO AM I?"(그러면 난 정말 누구인가?) 라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자신의 존재마저 뒤흔들게 만든 이 지상최대 사기쇼 사건에서 심연까지 겪었던 그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 였다. 그의 진실된 사랑 실비아이다.

대학교때 처음 만난 실비아를 보고 트루먼은 한눈에 반한다. 이런 트루먼을 실비아도 사랑하게 된다.그런데 그는 그녀를 사랑할 수 가, 그녀를 그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서로 다가서면 주위 모든 것이 틀어지며 어떻게든 방해가 시작됐다. 트루먼을 사랑해서 진실을 말해주지만 결국 그녀는 사라지고, 트루먼은 실비아를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라져가는 기억들을 붙잡아 가며 자신이 기억하는 실비아를 사진으로나마 만들어 항상 지니고 다닌다. 너무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실비아의 입을 빌어 FREE트루먼을 외쳤을 거라 생각된다. 오로지 트루먼을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진실된 사랑 뿐이었다. 처음에는 실비아가 트루먼에 대해 연민,동정에 의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타샤 맥켈혼(실비아 역)의 연기를 보고 의심은 사라졌다. 이런 애틋하고도 진실된 사랑을 인생을 통해 한다면 그 자체로 성공하고 행복한 인생일 거란 생각도 든다.

 

트루먼이 탈출하게 되면서 가장 허탈해한 인물은 바로 트루먼쇼를 기획하고 제작한 크리스토프 감독이었다. 그는 신의 권력에 취한 인물로 보였다. 전지전능함을 무장한 그는 도덕관념 자체가 달랐다. 억압과 통제는 자유를 박해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트루먼 그에게 있어서 새롭고 편안하고 투명한 삶을 선사하는 축복과도 같다고 굳게 믿는다. 이런 감독의 생각을 한번 헤아려본다. 실제로 트루먼만 모른다면 몰랐다면 촬영장 밖 사람들이 겪는 치열한 삶의 경쟁, 싸움 없이 순탄한 삶을 죽었을테니까. 실제 인간사 더러운 꼴은 안봐도 됐으니까 축복이라고 한 것 같다. 감톡크리스토프는 트루먼에게 부성애로 느껴질 만큼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아니 부성애로 포장된 걸작품(Master piece)에 대한 애정을 가질 뿐이다. 아버지가 아닌 위대한 예술가로서 .. 


여기서 영화를 보며 삶에 대한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첫째, 그렇다면 크리스토프가 생각하듯 , 트루먼(방속국에서 입양한 아이)을 스타로 만들어주고 더 나은 삶을 줬다고 자부하는 것처럼 개인이 개인을 구속, 통제, 억압할 권리가 주어지는가? 그 목적이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말이다.

개인적 의견을 말하자면,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구속하고 억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억압할 권리를 지닌 개인을 지배자라고 부르고 다른 이를 피지배자라고 부른다면 지배자의 논리에는 어떠한 선한 목적이 있다. 하지만 그 선한 목적에서 '선하다'는 전제 자체가 지배자의 논리로 부터 나오기 때문에 피지배자의 생각과 동의는 일절 들어가지 않았다. 트루먼을 예로 들면, 그가 어떤 삶을 살고 그 안에서 불행을 느끼건 행복을 느끼건 그 선택권은 절대적으로 트루먼에게 있는 것이고, 그 안에서 불행하더도 그것은 트루먼의 선택에 의해 그가 감수해나가야 할 대상인 것이다. 즉 트루먼을 향한 크리스토프의 사랑은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


둘째, 개인 인생 자체가 허구, 각색, 연출된 상항임에도 불구하고 그는(트루먼) 진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정을 해볼 수 있겠다. 트루먼이 죽을때 까지 만약 연출된 상활을 몰랐다면? 트루먼 입장에서는 진짜 인생을 살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 안에서도 어떠한 선택들이 조작됐지만 일어났고 그 결과로 인한 삶을 살기는 살았으니까. 외부적인 관찰자에 입장에서라면 말도 안되는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중간에 트루먼이 알았더라면 그 전까지는 트루먼은 제대로 된 진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겠다. 삶에서 자신이 주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그 선택의 누적분이 곧 나를 결정해주는 것이고, 하지만 선택조차 조작된 것이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면 존재에대한 믿음이 깨지며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상최대의 몰래카메라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끝이 났다. 카메라속 세상은 끝이 났을 지라도 카메라밖 우리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확신한다. 한번쯤 아이들과 함께 도덕적으로 토론을 해보고 싶은 주제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그리고 세상이 내중심으로 흘러가지 않는 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다시 포스터를 보니 새 한마리가 슬퍼보인다. 트루먼 그 자신이 멀리 날아가는 새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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