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Posted by 티쳐리
2017. 10. 25. 09:00 리뷰/책 리뷰

연을 쫓는 아이 - 할레이드 호세이니 

할레이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주인공 아미르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는 테러의 중심지라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만큼 정보가 차단되고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잘몰라도 내전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현실을 소설속에 담아냄으로써 읽다보면 주인공 아미르와 하산이 어딘가에 실재할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에서 뜨거운 무언가 솟구쳤다. 마지막쯤으로 달리다 보면 생각지 못한 반전까지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아미르와 하산

소설 속 큰 줄기는 아미르와 하산일 것이다. 아미르는 하산에게 평생 잊지 못할 잘못을 저지르고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려 살아갔다. 아미르는 성인이 되었지만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가슴 졸이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릴적 바바(아미르 아버지)의 친구 라임칸의 연락을 받는다. 자신의 죄를 덜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연락이었다. 

아미르와 하산은 한때 둘도 없는 친구사이다. 어릴적에는 같은 유모로부터 젖을 나눠먹기도 했다. 신분적으로는 주인(아미르)와 종(하산)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의지하고 믿고 좋아했다. 
"우리의 시선은 하늘을 날고 있는 연에 고정되어 있었다.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말도 오가지 않았다. 할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아도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관계였다. 특히나 연날리기에서는 더 그랬다.


종 하산은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천번도 더 그럴수 있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아미르를 향해 절대적인 충성을 다했다. 그런 하산을 아미르역시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진심으로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는 하산을 애정했다. 그 둘의 관계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둘사이를 강하게 맺어주던 연날리기에서 아미르는 충격적인 배신을 하게된다. 

아미르를 향해 절대적인 복종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던 하산의 위험을 알고도 그것이 자신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눈을 질끔 감아버릴 뿐이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하산은 그 사고가 있었지만 아미르를 향한 애정은 변치않았다. 다만 변한건 아미르 자신뿐이었다. 자신의 죄책감의 원흉이 하산이라도 여긴나머지 못된 계략을 통해 하산 부자를 내쫒게 만들었다. 눈에서 하산이 보이지 않으면 생각이 들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의 어리숙했던 생각도 잠시 자신의 죄책감의 원인은 하산이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일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한때 둘도 없는 친구였던 두 소년은 한사람의 배신으로 좁힐 수 없는 거리를 간직한 채 살아가야하는 두 청년이 되었다. 아미르는 바바를 따라 미국으로 건나가고 하산은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자신들의 삶을 이어나갔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다한들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보다는 좁았을 것이다. 라임칸의 연락을 받고 아미르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충격적인 진실과 선물을 받게 된다. 


아미르와 하산은 사실 바바의 피를 이어받은 배다른 형제였던 것이다. 단순히 몸종을 배신했다에서 가족의 어려움을 외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아미르가 저질렀던 배신은 더 커져버렸고 씻을 수 없을 듯해보였다. 아미르는 어딘가 모르게 하산을 닮아있는 아이를 만난다. 예상대로 그 아이는 하산의 자식이었고, 하산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미르가 속죄할 길은 이 아이, 한때 절친했던 그리고 나의 형제의 자식인, 아이를 거두어 들이는 길 밖에 없었음을 자신도 직감했다. 그리고 아미르는 하산의 자식(소랍)을 향해 외쳤다. "널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읽으면서 울컥한 부분이 여러번 있엇다. 하산이 아미르를 향해 하던 말이 아미르가 소랍을 향해 외치는 말로 되돌아 왔을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산이 살아았었다면 어땟을까 상상도 해보게 됐다.


아미르는 소랍을 거두어 들이면서 자신을 묶고 있던 죄책감에서 벗어날 기회를 찾게되었다. 항상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속죄할 기회만을 찾던 그는 그의 어린시절 잘못을 비난만 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성숙했다. 누구나 어린시절에 잘못을 하긴 마련이다. 그 잘못의 경중을 가장 잘 알고 체감하는 것은 자신일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아미르와 하산의 애정어린 관계가 틀어지는 것에 슬퍼하고 먼 길을 빙빙돌다가 제자리로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슬픔과 기쁨 등을 느끼게 된것은 어쩌면 우리도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유년시절의 잘못들이 생각나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나빠졌던 일들에 대한 회한과 회복되기만을 바라던 감정들을 모두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어서는 아닐까.

살면서 어린 시절을 겪었기에 공감하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하고 또 읽으면서 나도 성장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명대사 

할레이드 호세이니 <연을 쫓는 아이>에는 잊지 못할 여러 말들이 나온다. 우선 우직하고 남자다움의 상징 이었던 바바의 신념의 잘 보여주는 말이 인상깊엇다. 
"모든 죄는 도둑질로 부터 시작되고, 도둑질의 변형이다." 

살인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삶을 살아갈 권리를 훔쳐가는 것이고, 거짓말을 하는것은 상대방이 진실을 알아야할 권리를 앗아가는 것이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말이 소설속에 너무도 깊고 세세하게 묻어나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아미르가 하산에게 죄를 뒤짚어 씌울때 자신의 물건을 숨겨 하산이 훔쳐갔다고 말했다. 아미르는 하산이 바바가 말하듯이 모든 죄를 짓고 있고 자신의 죄책감이 들게 만드는 죄까지도 하산이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것 처럼 보였다. 그렇게라도 하면서 조금이라도 죄책감으로 벗어나고 싶었던 절실함이 느껴졌다.


앞에서 말햇듯이 소설의 배경은 중동아시아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우리나라와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슬픈 문구가 있었다.  

어디선가 읽거나 누군가에게 들은 구절이 떠올랐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어린아이들이 많지만 유년기는 거의 없다."

당연히 인간이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체적,정신적 성장을 겪는다. 어린아이 시절을 겪고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된다. 당연히 겪어야 될 시기 속에서 어린아이들은 많지만 유년기가 없다는 말이 굉장히 모순된 것처럼 보이면서 슬프게 다가왔다. 


어린아이시절에 겪어야할 경험을 제대로한 아이들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유년기가 없는 어린이들을 상상하는 것조차 고통스럽고 불편하다. 아프가니스탄은 잦은 내전과 많은 희생을 통해 격동의 시절을 겪었다. 그런 상황에서 생존의 문제가 심각했던 것이다. 살아가는것 조차 버거운 환경에서 어린아이들이 갖을 수있는 유년기의 경험은 사치가 될 정도였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더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슬프게 했던것은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다른 문제에 있어서 유년기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는것이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졌다. 분명 지금은 쇠와 철로된 무기를 가지고 전쟁하는 격동기를 지나서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21세기인데도 말이다. 

유년기가 사치가 될 정도로 경쟁이 심해진 사회가 원인일 것이다. 어린시절만큼은 멋모르고 뛰어놀고, 만들고, 같이 웃고 기뻐하고 떠들고 노는 시간이 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간조차 아까워하면서 청소년기와 성인기에서의 생존의식감을 심어주는 사회가 원망스럽다. 남들보다 빠르게 해내서 성과를 내는 것을 우수하다는 것으로 효율성에 입각해서 사회가 돌아가는 현실이 한국사회의 전밥적인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이 내전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 살아남으려 경쟁햇지만, 우리는 무기만 안들었을 뿐 살아남으려 경쟁시키는 것은 똑같다. 


유년시절을 겪지 않다보면 후에 이소설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까 괜한 걱정도 스쳐갔다. 소설속 숨겨진 대사들이 미성숙했던 나를 되돌아보고 나의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고 한층 성장시켜준다. 처음 접해본 할레이드 호세이니의 작품이었지만 마음속 깊이 새겨지는 소설이되버렸다. 소설가 할레이드 호세이니 라는 이름도 잊혀지지 않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