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과 우정으로 뭉친 시실리인 마피아영화 『대부Ⅰ God Father』

Posted by 티쳐리
2017. 10. 15. 06:00 리뷰/영화 리뷰

존경과 우정으로 뭉친 시실리인 또다른 이름 마피아  『대부Ⅰ God Father』


 학창시절 다같이 둘러앉아 마피아게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처음에는 서로 머리를 숙여 누가 어떤 직업을 부여받는지 모른채 시작한다. 그러다 한명 한명 죽어가면서 게임에서 탈락한다. 결국 끝까지 마피아가 숨어서 모든 사람들을 없애면 승리한다. 마피아가 시민을 다 없애기 전에 마피아인것이 밝혀지면 게임에서 진다. 마피아 놀이를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생각해보면 밤이되면 사람을 죽이고 아침이면 이야기를 하고 다시 밤이되면 사람을 처단하고 하는 것이 잔인해보이지만 게임의 묘미는 범인을 찾아 나서는 심리전에 있다. 이런 묘미에 걸그룹 IOI(아이오아이)도 마피아를 즐겨했다고 한다. 마피아는 이렇게 생활에서 게임과 놀이에 소재가 될 만큼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어떻게 마피아가 생활속에 깊게 들어왔을까? 영화 마리오푸조의 대부(Mario puzo's God Father)가 잘 설명해준다.   



 마리오 푸조의 <대부(Mario puzo's God Father) 시리즈>는 총 3부작으로 구성된다. 오늘은 먼저 1972년에 개봉한 대부1을 보고자 한다. 우선 대부는 책으로 먼저 출간되었다. 말을 안해도 짐작하겠지만 미국에서 67주 동안 <<뉴욕타임스>>에 베스트 셀러가 될 만큼 인기가 많았다. 인기에 힘업어 영화로 까지 나오게 된 작품이다. 

포스터를 보면 심플하지만 강렬하다. 검은 배경에 강렬해보이는 한 사람이 보인다. 포스터는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영화상 최고의 걸작이 되살아난다'고 말한다. 보는 순간 정말 감탄사와 명작이라는 말에 결렬하게 동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물 중심으로 바라보기

영화를 명작답게 만들어준 요소는 다름아닌 인물들에 있다고 본다. 스토리는 사실 간단하다. 뒷조직인 마피아의 수장이었던 꼴레오네의 사투와 몰락 그리고 후계자의 등장이다. 하지만 스토리안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세심한 연기와 연출이 굉장히 도드라진다. 인물들의 성격과 그 성격을 표현하는 장면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의 모습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1. 돈 비토 꼴레오네
꼴레오네 패밀리의 우두머리이며 정치권과 경찰,검찰등 막강한 공권력까지 손잡고 있는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그는 교환가치에 중심을 사업을 이끌어나간다. 교환가치라는 것은 신임에 바탕을 두고 다른 사람이 꺼려하는 일처리를 대신해주면 자신이 필요한 일은 해결해준 보답으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에게 신뢰와 믿음의 징표를 표하는 방법은 "God Father""대부"님 이라며 손등에 키스를 하는 것이다. 굉장히 의미있는 행동이다. 당신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내놓겠다는 종교적 의식과도 같아 보인다.
돈 비토 꼴레오네는 누군가의 부탁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만큼 자신만의 철칙과 철학이 있다. 특히나 자신이 하던 사업과는 달리 마약사업이 흥했지만 당당히 거절한다. 그는 자신의 뜻을 쉽사리 보이지 않았고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과감히 거절할 줄 알았다.
말론브란도(돈 꼴레오네 역)는 권위있고 엄격한 꼴레오네를 살리려고 일부러 입을 꽉 다물고 이야기를 하는것 같았다. 입을 꽉 다물고 이야기하면서 목소리를 절제했지만 강했다. 목소리로 자신의 힘을 굳이 과시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엄숙하고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자라는 분위기를 살려냈다.  

또한 비토꼴레오네는 굉장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패밀리를 지키기위해 온갖 수난을 다 겪었던 경험에서 나온 통찰력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음모를 계락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집어낼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이성적인 인물이다. 이성을 붙잡는 모습은 아들의 죽음에서 최고조로 나타난다. 장남인 소니의 죽음 앞에서 조차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사업이라는 명목안에 슬픔을 모두 담아 승화시키며 이성을 붙잡는다. 당연히 자신이 패밀리를 지켜왔던 이유가 사랑하는 가족을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였던 그에게 있어서 소니의 죽음은 가장 큰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슬픔을 참고 절제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 거렸다.

굉장히 이성적이고 기계같이 보이는 그에게도 굉장히 인간적인 면모가 있음이 드러나는 장면이 나온다. 죽기전전 까지 어린 손자와 놀아주는 장면은 영락없이 친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본래 인간적이지만 가족을 지키기위해 스스로 엄격해지고 이성적이며 감정을 통제할 수 밖에 없던 그의 삶은 안타까우면서도 안쓰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자신의 막내아들 마이클 만큼은 자신의 길을 걷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에서 보편된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한 마피아의 보스, 돈 비토 꼴레오네, 차갑게만 보여도 그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아버지였던 것이다. 



2.톰 하겐

원래 고아 출신이었지만 어릴 적 돈 꼴레오네의 양아들로 들어온다. 커서는 꼴레오네 패밀리의 개인 변호사이며, 고문 역할을 맡는다. 조직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힘있는 사람뿐아니라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 현명한 두뇌역할을 담담한다. 패밀리 중 누구보다도 이성적이어야 했다. 친아들은 아니지만 다른 아들들에 떨어지지 않을 만큼 아버지에게 충성심이 높았고, 사랑했다. 그의 차가우면서 날카롭고 이성적인 모습은 조니관련 사업차 감독을 방문했을 때 도드라진다. 감독이 왜 자신이 조니(돈비토꼴레오네 양아들이자 유명가수)를 쓸 수 없는지 감정적으로 호소 하면서 화를 낸다. 처음부터 그때까지도 톰하겐은 조용하고 천천히 식사를 마친다. 얘기를 할때도 목소리 조차 떨리지 않고 흥분이란 감정은 전혀 찾아 볼 수없다. 감정이 있다고 여겨지지도 않는다. 흥분한 감독과 차분한 톰 하겐, 그 둘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이성vs감정의 대결구도를 잘 보여줬다. 그가 최대한 격하게 감정을 표현했을때가 소니의 죽임이었다. 그 역시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그때 만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3.산티노 소니 

소니는 돈 꼴레오네의 장남으로 굉장히 전투적이고 활발한 마초남이다. 그는 풍채부터 남다른데 어깨가 태평양 어깨다. 호전적인 겉모습에 걸맞게 성격도 화를 잘 참지 못하고 급하며 바람끼도 있으며 ,한마디로 감정적이다. 이런 감정적인 성격을 보이는 순간부터 그는 조직의 수장인 대부가 될 수 없음을 조심스레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패밀리에 대해서는 애정이 넘친다. 장남이라 그런지 동생들을 아꼈는데 여동생일을 급하게 처리하러 가다 속임수에 빠져 개죽음을 당한다. 


4.마이클 꼴레오네

마이클은 꼴레오네의 막내 아들이다. 막내인 만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아버지의 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자신은 아버지와 같이 뒷세계의 커다란 힘을 갖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암살 위기를 겪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이클은 패밀리 중 가장 여렸지만, 누구보다도 강인해져야만 했다. 강한 마음을 먹게 만든 첫 임무는 바로 아버지에 대한 복수였다. 복수는 성공적이었다. 복수의 장면에서 초조해하는 눈, 망설이며 떨리는 얼굴 근육들, 침을 삼키는 모습을 보면 알파치노의 연기력에 소름이 돋는다. 큰 움직임 없이 절제된 감정들을 잘 묘사했다. 복쉬 한 뒤 마이클은 아버지의 고향에 잠적한다. 거기서 아름답고 순수한 여인 아폴로니아를 만난다. 한눈에 반했다는 표정이 어린 꼬마라도 알정도다. 그 둘은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결혼까지 하게 되만 짧은 결혼생활은 암살로 마무리 된다. 마이클은 이런 수난들을 겪으며 더 강하고 독한 마음을 먹어야했을 것이다. 그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마이클은 옛여인 케이를 찾아가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간다. 가정을 꾸려나감과 동시에 그는 책임감이 더 무거워졌을 것이다. 소니형의 죽음이후 아버지의 뒤를 이러 패밀리를 돌보게 되는데 더이상 불법접인 노선이 아닌 합법적인 노선으로 갈아타기 시작한다. 합법적으로 갈아타면서 사람들의 생활 속에는 더 깊이 들어 오게 된다. 달라진 눈빛 만큼이나 마이클은 감정적이고 여렸던 모습은 사라지고 차가워지고 냉정해졌다. 누나의 남편(매형)이 배신을 해서 소니형이 죽은 것을 알고 망설임없이 처리하게 되고, 다른 조직들의 보스 마저 정리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마피아시대를 열어나간다.


교차되는 장면들

영화의 또다른 묘미는 교차되는 장면들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톰하겐과 감독의 모습이 교차되는 장면과 같은 것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에 다가섰을때 교차편집되서 연출된 장면은 가히 경이롭다. 보고 있으면 전율이 일어날 정도다. 
돈 비토 꼴레오네의 장례가 치뤄질때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사람도 있겠고, 속으로 교활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도 모여있다. 장례식 이후 마이클은 누나 아들의 대부가 되기위해 같이 성당을 찾는다. 성당에서 주례가 시작되고 세례가 시작된다. 그와 동시에 화면이 바뀌며 패밀리 사람들이 분주히 무언가를 준비한다. 성당안에서 세례받는 모습이 다시 나오고 새로운 아이의 탄생과 축복을 보여주는 동시에, 꼴레오네 패밀리 사람들이 자신들의 적이 었던 오래된 앙숙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모습이 교차한다.  
새로운 생명과 새시대의 도래 그리고 오래된 세대의 몰락을 보여주는 장면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신성한 성당에서의 종교의식과 악이라 상정했던 사람들의 처단의식을 하나의 수평선에 놓음으로써 의미심장하게 보여진다. 

어디에 초점을 두고 보든지 간에 명작이라 생각한다. 인물들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을 보는 맛도 있다. 또한 이영화는 마피아에 대해 미화시키고 옹호한다기 보다는 치열하고, 간절했던 그리고 격정적으로 살아온 한 가족의 일화에 무게가 쏠려있다. 한번 보고나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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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바다위 깊은 항해의 시작 『 캐리비안의 해적 Pirates of the caribbean』

Posted by 티쳐리
2017. 10. 14. 06:00 리뷰/영화 리뷰

넓은 바다위 깊은 항해의 시작 『 캐리비안의 해적 Pirates of the Caribbean』

바다는 우리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우리가 모든 바다를 가보지 못했기에 그럴것이다. 그렇기에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바다를 정복하여 모든 두려움을 없애려는 자들의 이야기가 바로 캐리비안 해적 시리즈다. 시리즈는 총 5개로 구성된다.

1.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The curse of Black pearl,2003) 

2.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함(Dead man's chest,2006) 

3.캐리비안의 해적-세상끝에서(At world's end,2007) 

4.캐리비안의 해적-낯선조류(Strange tides,2011) 

5.캐리비안의 해적-죽은자는 말이없다(Dead man tell no tales,2017)  

바다위에서 해적으로 살아가는 아찔한 모험의 끝이 맺어지는데 장장14년이 걸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세계관과 시리즈는 날로 커졌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이어 거대한 모험의 완성된 작품으로 합류한 것이다. 


 

캐리비안 시리즈를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가는줄 몰랐다고 할 것 이다. 맞는말이다. 배와 나침반을 가지고 자유롭게 떠나는 삶을 사는 잭스패로우의 항해를 보고있으면 바다로 나가고 싶어진다.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시리즈를 감상하는데 즐거움을 주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먼저 독특한 캐릭터들의 설정과 연기력. 특히나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잭스패로우다. 잭스패로우는 한때 잘나가던 블랙펄호의 주인 선장이다. 하지만 팀원이었던 바르로사의 배신으로 나침반만 손에 쥔 채 버려진다. 그후 그의 삶은 위태위태 마치 칼날위를 걸어가는 듯하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잭스패로우는 뛰어난 기지와 순발력을 가지고 있다. 항상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거리지만 , 잭스패로우가 위기상황에서 대처하는 능력과 선택에 있어서 과감함은 보는 동안 웃음과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웃음과 여유가 흘러넘친다. 그렇지만도 그만의 카리스마는 적절히 유지하고 있다. 잭을 보면 '샤를피에르 보돌레르의 시. <취해야한다>'가 떠오른다. 

"늘 취해 있어야 한다. 어깨를 짓눌러 그대를 한껏 움츠리게 하는 시간의 벅찬짐을 벗어 버리려면 언제나 취해 있어야만 하는것이…시간의 궁색한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늘상 취해 있으라! 술에건, 시에건, 미덕에건, 당신뜻대로 "

잭스패로우를 보면 항상 취해있다. 술에건, 바다에건 그런 취기가 잭스패로우의 여유로움을 만들어준것 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를 억압할 수 있는건 시간도 죽음도 아니였다. 시간은 그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는 것일뿐, 흐르는데로 놔두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지낼 뿐이다. 또한 시간의 끝자락에서 마주친 죽음도 그의 적수는 못되었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에는 죽음의 힘도 모자랐다. 이런 잭스패로우를 보면 나역시도 취하게 된다. 그 순간 만큼은 시간의 벅찬 짐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고, 여유로워 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즐거움을 주는 두번째 요소는 스토리다. 5시리즈의 거대한 스토리를 한데 묶어주는 키워드가 있는데 바로 "배신"그리고 "사랑"이다. 배신과 관련해서는 정말 내용의 흐름은 배신과 배반의 연속이다. 서로 속고 속이는 장면을 놓치면 해적모험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잭스패로우가 외딴 섬에 버려지기 전에도 바르보사의 배신이 있었다. 그 배신을 뒤로하고 잭이 바르보사를 속이는 이야기, 그리고 잭의 목숨을 담보로하는 엘리자베스의 배반 , 목숨을 걸고 데비존스의 배 플라잉더치맨호에서 벌이는 윌터너의 사기극극, 샤오팽의 야망이 만들어낸 뒤통수치기 작전, 동인도회사에 영원한 앞잡이 베켓의 얄팍한 술수들 등이 모두 다 배신의 연속이다. 어디서 부터 시작이고 꼬여있는지 참 길고 깊게도 얽혔다. 그런데 다른 영화와 작품들에서와 달리 배신이 기분나쁘지가 않다. 마치 원래 당하기라도 할거처럼 여겨진다. 이미 너무 많이 속아서 그럴 수도 있겠고. 디즈니의 스타일로 표현해서 그런지 잔인하거나 더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시 한번 영화를 본다면 배신하는 횟수를 세어가며 정리하는 것도 즐거움을 찾아 보는 방법이 되겟다.


즐거움을 주는 세번째 주는 요소는 인물들과의 관계다. 여기서는 앞서 소개한 키워드 "사랑"과도 관련이 깊다. 먼저 윌 터너와 엘리자베스 스완. 윌과 엘리자베스의 관계는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이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는 말이지만 '운명적이다'는 말보다 더 이 둘의 사랑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둘의 인연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던 사이 엘리자베스 아버지의 배에 의해 한 꼬마가 목숨을 건진다. 그 둘은 그때 부터 보이지 않는 신호를 서로에게 보내고 있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 했던가. 그둘의 사랑은 점점 짙어지고 깊어져갔다. 결국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둘 사이를 아무도 갈라 놓을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사랑을 했것만 잔인하게도 윌 터너는 플라잉더치맨호의 선장이 되며 매10년간 1번만 엘리자베스와 만날수 있는 저주에 걸린다. 그러나 지도한 저주도 그들의 사랑을 갈라 놓진 못했다. 숨겨져 있던 아들이 저주를 풀면서 두 사람의 재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떤 방해물이 나타나더라도 둘 사이에 사랑에는 흠을 낼 수가 없었다. 

다음은 데비존스와 티아달마(칼립소)가 있다. 데비존스는 한때 온 바다를 주름잡던 악명높은 해적이었다. 그는 바다의여신 칼립소(티아달마)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더이상 자신의 마음을 못믿고 보기 싫은 나머지 심장을 도려낸다. 더이상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위해 근본을 차단해버리는 선택을 한것이다. 마음을 도려냈지만 항상 그녀를 생각하고 그리고 차가워 질 수 밖에 없었던 데비존스의 모습이 안타깝게 보인다.   

그리고 주연은 아니지만 스토리상 중요했던 성직자와 인어의 사랑도 있다. 그 둘의 사랑도 순탄하지 만은 않다. 여러 방해공작에 진실됐던 사랑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입는다. 그러나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서로의 곁을 지키며 진실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을 보면, 서로 흘리는 눌물이 마치 나의 눈물처럼 느껴진다. 또한 이둘의 사랑을 보면서 "다른 종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는 질문을 하게됐다. 인어라는 것은 엄연히 인간과 비슷한 부분은 있으나 다른 종이다. 서로 다른 종끼리 사랑에도 빠질 수 있는가하는 철학적인 질문까지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순수한 사랑이다.


즐거움을 주는 네번째 요소로는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캐리비안 해적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주인공들은 대부분 남자로 누군가의 아들, 남편, 그리고 아버지이다. 내용 전체의 흐름에 있어서도 아버지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특정 한캐릭터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렇다.윌터너의 아버지 빌터너는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그리고 잭스패로우의 아버지 역시 잭이 모험을 하는데 큰 역할을 맡고 있고, 잭의 사랑했던 여인 안젤리카의 아버지는 바로 영생을 위해 딸까지 배신하는 악덕스러운 검은 수염이다. 모든 시리즈에서 아버지의 역할들은 눈에 띄지 않지만 한번씩은 다 나오는 것 같다. 마지막 시리즈에서도 역시 평생의 저주에서 아버지를 구해내는 아들이 나오고, 나쁜 해적의 원조 바르보사 역시 누군가의 한 아버지로서 나온다. 아버지를 직접적으로 앞에 내세워 이야기하진 않지만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기에 아름다운 스토리와 구성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통해 중요성과 사랑을 다시한번 느끼게 한다. 


이밖에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요소는 많다. 시리즈 수와 화려한 함대 전투 장면만으로도 가슴 설렐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전개가 이어질지에 대한 기대감도 큰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나서 명대사를 하나 뽑으면 잭의 대사를 말하고 싶다.

"뭣보다 사람은 죽는날을 모르는게 좋아. 삶의 신비를 만끽하며 후회없이 살면되지!"

항상 여유 가득한 그,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만끽할 줄 아는 해적이 었던 잭스패로우답다. 그가 가지고 있는 나침반이 이보다 더 탐스러울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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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적당히 차갑고 가슴은 적당히 뜨거운 『내 나이 서른하나』

Posted by 티쳐리
2017. 10. 13. 06:00 리뷰/책 리뷰

머리는 적당히 차갑고 가슴은 적당히 뜨거운 『내 나이 서른하나』

한가한 주말 오후, 중고서점에 들러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직 20대인 나에게 있어서 서른하나는 겪어보지 못한 나이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지금 내나이에 벌어지는 불안감을 잊기 위해 먼 미래를 찾아 나섰던 것일까? 故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좋아해서 였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발걸음이 이끄는대로 손이 뻗는대로 손웨 쥐고나니 <내 나이 서른하나> 였다. 과연 서른하나의 삶은 어떨까?


나이에서 앞자리가 바뀐다는 것은 때로는 큰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스무살을 거쳐 서른으로 넘어가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상이 마치 끝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한다. 이 책에는 서른 한명명이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 31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여자, 아들에 집착하는 여자, 약에 의지하는 여자, 여행을 즐기는 여자,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여자, 섹스에 몰입하는 여자 등등..각기 다른 삶을 살아도 그들 모두 같은 서른한살이다. 그녀들 모두 세상이 마치 끝날거 같은 느낌을 지났지만 끝나기는 커녕 이제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른한살은 그런 나이다.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 '서른 한살짜리 여자가 좋다. 그녀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남자를 이해한다. "난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여자가 좋아. 더 이상 방황하지도 않고 나름대로 확고한 가치관도 가지고있고, 그러면서도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고,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잖아."

20대를 지나치면서 잃을것이 ,잃은것들이 많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 나이서른하나>에 나오는 에피소드 모두가 즐겁다. 읽으면서 지루할 틈이 없다. 하나를 음미하려는 순간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일본 작가 특유의 감정과 문화가 많이 반영되있다. 읽으면서는 '에이 설마 그럴수 있나?'라고 할 정도로 현실과 뒤떨어져 보이기도 하다가 읽고나면 '그래 그럴수도 있지.그런거야'라고 하게된다. 여러 이야기 마다 서른하나 주인공들이 나오며 다채롭다. 그리고 스토리마다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문구들이 있다. 그 문구들을 읽으면서 생각에 빠져 보는 재미도 있다.

몇가지 문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에게는 대학시절부터 10년간 사귄 애인이 있다. 그와 계속 만나느 것은 결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특별히 헤어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돌부리에 쿵 넘어진적이 있지 않는가? 버스에 서서가다 기사님이 브레이크를 밟았을때 앞으로 튕겨나간적 있을 것이다. 주말 아침에는 늦게 일어난느 습관, 손톱을 물어 뜯는 일 등 모두 관성이다. 분류하자면 과학적 의미의 물리적 관성과 일상생활의 관성 이랄까. 저 문장은 어떠한가? 처음 읽었을 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던 열정적인 사랑이 어느 샌가 깊어지고, 익숙해지고, 반복됨에 따라 관성마냥 되어버린다는 사실에 놀랐다. 권태기를 느끼는 커플들은 연애의 관성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읽으면서 이말을 기억해둬야겠다 다짐한다. 사랑으로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혹은 나에게 나중에 진득하게 던져볼 수 있는 그런 질문이 될거 같다.


"좋아하고 좋아하며 또 좋아하는 그. 좋아하는 이유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좋아하는 그"  

이문장을 읽으면서 어떤 한 상황이 떠올랐다. 마치 내가 소설속 주인공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애인이 생긴 친구가 있다. 오랜만에 모인 동창모임에서 친구들이 물었다.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 어디가 좋아서 사귀게 된거야?' 여기 저기서 쉴새 없이 질문들이 날아든다. '글쎄..웃는 모습이 예쁘고, 성싱하고. 음 다좋아' '아 뭐야. 다 좋다고? 시시하네' 무슨대답을 원한 걸까 그 친구들은. 자신을 만족시켜주는 장점을 골라 얘기해 줬어야 하는 걸까? 만약 애인이 생긴 친구가 나였고, 내가 그렇게 꼭 집어 대답할 수 있었다면 슬펐을 것이다. 반대로 그 친구가 자신 애인의 좋은 점을 꼭 집어 말해도 슬펐을 것이다. 왜왜냐고? 그런 말을 할 수있다는건 그런 장점을 가진 다른 사람으로 대체 될 수 있다는 말이니까. 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 있고, 대체재를 구할 수 잇는 사람이니까. 너무 잔인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애인이 물어도 나는 똑같이 말할것이다. "다 좋아 . 다 사랑스러워" 라고. 어쩌면 너에게는 부족한 대답일지 모른다. 구체적이지 않고 너무 몽상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물론 너의 좋은 점을 밤낮으로 구구절절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점점 슬퍼질거 같다. "다좋아"라고 사실을 말함으로 너는 나에게 누군가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랑, 더 몰입할 수있는 사랑으로 다가온다는걸 이해해 주길 바랄뿐이다. 

한문장을 읽었는데 마치 소설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이유 만큼 알 수 없이 좋아함을 느낄 수있는 나이가 서른하나다. 그런 아름다운 나이를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모습에 감탄스럽다.


이 책의 묘미는 본문을 읽으며 재미를 느끼는 것 뿐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작가 못지 않게 아름다움을 표현해내는 멋진 말이 옮긴이의 말에 있었다. <내나이서른하나>를 옮긴 이선희의 말이 그렇다. 짧지만 정확하게 가슴에 와닿는 말들이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천천히 음미할 수록 그 감동도 깊어진다.


"때로는 열심히 때로는 나태하게 때로는 정열적으로 때로는 게으르게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소극적으로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나른하게.. 그렇게 살다 문득 정신 차리니 어느새 서른한살. 그때 자기 앞에 놓여 있는것, 그때 자기가 하고 있는것, 그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서른한살. 이미 사랑에 목숨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하지도 않는 나이. 이미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없지만. 그렇다고 하루하루 적당히 살아가지도 않는 나이. 이미 인생이 장미빛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렇다고 허무한 시선으로 인생을 바라보지도 않는나이. 한마디로 말해서 머리는 적당히 차갑고, 가슴은 적당히 드거운 나이라고나 할까?"

서른 하나 나이에 대한 섬세하고도 깊은 생각이 담겨진 묘사가 아릅답다. 인생에 있어서 나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내 나이에 대한 묘사도 머리 속으로 해보도록 만드는 말이다. 책을 읽으며 옮긴이,역자에게 감동을 해보긴 이책이 처음이다. 이선희 역자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것만은 절대로 양보할 수없어.' 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을 잡기도 하고 행복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 당신이 가장 목숨거는 것은 다른 사람 눈에 하찮게 보일 수도, 시시하게 보일수도 있다.…(중략)그래도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하나만 있다면, 이 답답한 세상도 그럭저럭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읽으면 힐링이 되는 문구다. 누구나 다들 심심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글이다. <내나이서른한살>의 주인공들은 다들 소중한 것 하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여행,자동차,약,섹스,아들 등등 누군가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 왜냐면 그것은 그녀에게 소중한 것이지 나에게는 다른 무언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 진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오히려 잘된 셈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나에게는 다른 소중한 무언가가, 삶을 살아가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기니까!


마지막으로 자신의 나이가 가장 불안하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자기 인생중에서 가장 많이 살아온 나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엇이 펼져질지 겪어보지 않아서 걱정이 앞서는 나이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이기도 하다. 그러니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낟. 나에게도 반드시 서른한살은 찾아 올것이고 그때는 서른한살이 끝인것 처럼 불안하기도 할 것이다. 그때 다시 한번 이책을 꺼내들어 읽어보는 내모습을 상상해본다. 내 삶의 소중한 것을 찾았을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생각해보며 책을 다시 읽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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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가거나 빠져들것이다 『 도니다코 Donnie Darko 』

Posted by 티쳐리
2017. 10. 12. 06:00 리뷰/영화 리뷰

미쳐가거나 빠져들것이다. 영화『 도니다코 Donnie Darko』

도니다코, Donnie Darko의 예고편을 봤다. 예고편에서는 ' 메멘토 이후 1년 .. 당신의 상식은 뒤짚어진다. 세상을 파괴하라. 운명을 거부하라. 그리고 어둠을 무서워 하라. 전세계가 극착한 충격의 판타스틱 미스터리 공포. 세상을 조여오는 거대한 공포와 만날것이다'고 말한다. 굉장히 자극적이고 기대되는 문구들이 많이 나온다. 어떤 상식이 무너지고 , 어떤 운명을 거부해야 하며, 왜 어둠을 무서워해야할까?  


포스터를 보면 굉장히 미스테리하다. 검은 배경화면에 토끼 한마리가 그려져 있다. 토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귀여운 모습의 동물이 아닌 날카롭고 큰 이빨과 커다란 두개의 콧구멍 그리고 곧 튀어날듯하고 날렵하게 무엇인가 쳐다보는 듯한 초점 없는 두 눈이 있다. 눈은 굉장히 커서 무엇인가 잡아 먹어 눈앞에 품고 놓아 주지 않을 것 처럼보인다. 토끼의 전체적인 모습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모여 형성하고 있다. 왼쪽 귀 끝은 마치 손이 칼을 들고 있는것처럼 뾰족하다. 그리고 왼쪽귀에는 28064212가 쓰여있다. 무슨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고등학생 도니다코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환각과 몽유병적인 증세를 앓고 있다. 그는 가족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의 빠져 있어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이상한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가 토끼분장을 한 프랭크를 만난다. 정신을 차려보니 골프장 한가운데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것이다. 잠에서 깬 도니는 자신의 팔에 28064212라는 숫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토끼분장을 한 프랭크가 "28일 6시간 42분 12초 뒤에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고 말한 것을 기억해낸다. 집으로 돌아간 도니는 전날 밤 자신의 방에 정체모를 비행기 엔진이 추락하는 사고가 있엇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세상종말의 시간은 서서히 흘러가기 시작한다. 24일이 남은 날, 영어 시간에 배운 내용과 비슷한 물난리 사건이 일어난다. 일어나는 사건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여기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내용을 떠나서 교육적인 면에 있었다. 그들은 문학시간(자신들의 언어시간, 우리나라로 치면 국어시간)에 책한권을 읽으며 수업을 진행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학생들은 질문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그들이 학기동안 접하는 책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첫의 표지부터 시작해서 첫의 결말까지 읽어볼 기회를 접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무엇이 다른가? 우리나라 국어책을 들여다 보면 온전한 소설이 있지 않다. 여기서 온전하다는 말은 내용의 질을 떠나 처음-중간-끝(소설로 치자 기승전결의 구조)의 구성을 갖춘 작품이 극도로 짧은 단편말고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규 수업을 받으면서 온전한 소설조차 읽어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완전한것이 아니라 문학을 부분만 발췌하여 짜집기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읽고 해석하고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한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부분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교과서 집필진이 선정한 것이고, 그 소설의 핵심은 그부분이 아닐텐데 말이다. 이와 더불어 소설가 김영하 작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알쓸신잡에서 나와 말했듯이 김영하 작가는 자신의 글이 교과서에 발췌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글 전체가 들어가는 것은 상관없으나 조간난 부분만 써서 그것을 가지고 정답을 찾는 교육을 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만약 도니다코의 교실 속이라면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상상도 해봅니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오면 도니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살며 환각도 종종 계속 보게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감정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어요.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을 살펴봐야죠."라고 말할 만큼 똑부러진다. 그리고 그 말을 싫어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고지식한 꼰대 교사다. 우리나라의 모습과 너무 비슷해서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도 교육적인 부분을 생가해 볼 수 있다. 우리 한국 교육에서 어른들은 말잘하는 아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부모들은 꼬박꼬박 어른한테 말대꾸한다며 논리적인 주장을 펴는 자녀를 혼냈고, 교사와 교수는 질문하는 학생을 귀찮게 여기거나 구박했다. 하지만 도니는 이런 교사의 술수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전학생 그레첸이 오는데 그녀는 단번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녀도 가끔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만,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고 주체적인 도니다코 모습에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깊이가 깊어질 수록 도니다코의 증세는 심각해진다. 상담사는 도니다코가 '공격적이고 현실감각이 없어졌다'고 한다. 도니다코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기 시작한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믿고 있는 또다른 세계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도니는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과연 자신이 미쳐가는 것을 인지하는 느낌이란 어떨까? 상상이 잘 안간다. 내가 미쳐가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내가 하는 선택과 행동의 결과들을 보며 자책하기도 할 거같고 그냥 끊임없이 헛웃음이 터져나올것 같다. 마지막 까지 과연 나는 인정할 수있을지 아니면 인정하지 못하고 더 반항적인 행동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자신이 미쳐가는 것인지 아니면 운명에 의해 흘러가는 것인지 사건은 진행된다. 프랭크가 말해준 사건 발생 1일전 도니다코의 집에서는 할로윈파티가 한창이다. 그 파티장에서 예상치못한 의외의 인물을 만난다. 자동차사고로 그레첸을 잃게 되고, 상상속 인물이라 여겨졌던 토끼괴물 프랭크를 보게 된다. 도니다코는 결코 자신이 미쳐가는 것이 아니라 예정된 운명이 진행됨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 순간 총으로 프랭크의 눈을 쏜다. 프랭크의 죽음과 더불어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풀린다. 도니는 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이 미쳐가고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던 그 꿈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차라리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다시 눈을 감는다. 그 순간 비행물체는 도니의 방으로 쿵 떨어진다. 그리고 도니의 죽음과 함께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난다. 꿈을 꿧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리고 기억하는 이들은 그 꿈으로 고통을 겪는다. 도니의 주변인들의 모습을 보면 제각각이다. 프랭크는 자신의 왼쪽눈을 쓰다듬으며 놀라는 표정을 짓고, 중국인 여학생은 무언가에 홀린 표정을 짓고, 짐 커닝햄은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레첸은 사건이 일어난 아침 도니의 집을 지나며 도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인사를 하게 되면서 영화는 끝이난다.


결국 도니의 죽음으로 세상의 종말은 피해갈 수 있었다. 굉장히 심오하고 영화의 중요한 부분들이 내용속에 얼기설기 짜여져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 영화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중간에 멈추고 내용 틈틈이 나오는 개념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 개념들은 서로 연결되고 처음 내가 가졌던 생각을 바꿔놓았다. 영화 앞부분 까지만 보더라도 도니는 각 개별적인 사건들을 모아 나열해놓고 억지로 연결시키며 생각하는 태도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사건이 개별적이지만 마치 그 일들이 원래 하나, 일련의 사건이 었던것 처럼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중간에 나오는 인공물,기하세계,선택받은자 등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 또한 도니였다. 한번에 보고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이 또 영화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이 다르고, 두번째 읽었을 때 보이는게 다른 것 처럼 영화도 그렇다. 처음에 즐겼던 부분이 두번째와는 다를 수가 있다. 이영화는 딱 정말 그렇다. 처음보면 공포와 어두운 분위기에 휩싸일 수 있다. 두번째 보는순간 그걸 넘어서서 압도적이고 치밀하게 구성된 연출과 스토리에 놀란다. 그리고 자신이 가졌던 수수께끼와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한다. 궁금증과 의심스러웠던 점들이 풀리며 도니가 생각하듯이 개별적 사건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때의 감정을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은 영화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내용과 구성적인 측면 말고도 다른 것들을 느꼈다. 특히나 영화의 배경이 학교이다 보니 교육적인 측면이 눈에 들어왔다. 한가지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양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어쩌면 이것은 관객이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경향이 강하게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런것들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영화는 별로 되지 않는다고 본다. 나만의 포인트를 잡을 수 있었던 뜻깊은 영화다. 보면서 자신만의 포인트를 잡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을 얻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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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야만성,본성에 대한 성찰『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 』

Posted by 티쳐리
2017. 10. 11. 06:00 리뷰/책 리뷰

인간의 야만성,본성에 대한 성찰『 파리대왕 Lord of the files 』


윌리엄 골딩의 작품 『파리대왕 Lord of the files』, 제목만 봐서는 도저히 무슨 책인지 알 수 없다. 파리대왕. 마치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처럼 동물세계에서 파리가 대왕이 된다는 이야기인가 싶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한건 대학교 1학년 철학시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후회가 되긴하지만, 이작품을 음미하기에는 아직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성숙하지 못했다. 영화로 파리대왕을 처음 봤는데 우선 영화 나이가 내 나이보다 많았다. 배경은 전부 흑백이고 주인공들은 어린 꼬마아이들이 전부였다. 너무 오래된 영화의 구성에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우선 보긴 봤는데 원시인들 마냥 생활하다 구출되다는 이야기일 뿐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린 꼬마들의 잔인함과 야만성이 머리에 남았던지 책으로 다시 접해보고 싶었다. 



세상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건 귀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이말에 동감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 든다. <파리대왕>은 무인도에 표류된 어린 꼬마들을 앞에 내세운다. "인간의 야만성은 다른 동물에 비해 약한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을 책이 말해준다. "전혀 그렇지 않아. 숨겨져 있을 뿐이야."라고 말이다. 섬에 떨어진 소년들의 나이는 기껏해야 13세정도, 5~7세 가량 꼬마들도 있다. 순수함의 상징인 어린아이들이 주인공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은 섬에서 생존하기 위해 처음에는 협력적이었다. 천식이 있으며 몸집이 통통해 행동이 느린 소년 Piggy와 사회적 규범,가치 도덕성을 내재한 소년 랄프를 중심으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회의도 가진다. 그들은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소라고동을 들고 이야기를 한다. 소라고동은 민주적 절차의 상징물로써 작용한다.
그것도 잠시 한쪽에서 옷까지 맞춰 입은 한무리의 소년들이 나타난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잭. 그는 매우 날렵하고 다른 아이에 비해 육체적으로도 성숙해있으며 힘이 쎄다. 잭의 무리는 자신들은 사냥조가 되어 먹을 것을 구하겠다고 하며 나선다. 그들 역시 사냥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한번 맛들인 피의 사냥은 그들을 점점 갈아먹고 있었다.
결국 잭의무리와 랄프의 무리로 나눠지는데 잭의 무리는 일찍이 사냥을 하고 먹을거리를 얻는다. 하지만 랄프 무리는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랄프는 잭의 무리에게 먹을 것을 얻으러 간다. 잭은 먹을것을 주는 대신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점점 권력에 찌들어간다. 사냥감의 분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할분배의 목적이 형평성에서 벗어나 권력체제를 더 확고히 하는데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소라고동은 더이상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고대사회에서 지배계급이 생겨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잉여생산물이란 물질적 인것이 보이지 않는 계급과 권력이라는 비물질적인 것을 양산하는 것과 다를바 없어 보인다. 권력이 강해 짐에 따라 잭은 강압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불을 피우기 위해 Piggy(피기)의 안경을 강제로 빼앗는다. 어떤 합의나 절차 없이 그냥 순수 권력의 힘으로 약탈한다. 돼지소년 piggy에게는 생존의 수단이고, 섬 전체에서는 하나 뿐인 문물이고, 문물로서 경제적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강탈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고 없는 사람의 것을 그것 마저 없애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이전에 학습하지 않았던 야만적인 모습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잭의무리 그들은 스스로 가상의적을 상정하고 옷과 얼굴을 똑같이 맞춰나간다. 특히 스스로 인간의 얼굴을 포기하고, 진흙과 다양한 색들을 이용해 알아볼 수 없는 괴물의 얼굴을 선택한다. 같이 지내던 친구도 죽이고도 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순수해서 금방 잊고 웃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야만적 본성에 따라 괴롭힘, 공포를 즐기는 웃음인 것일까?  더욱놀랑누 것은 이들의 행동이 극닥적 민족주의인 파시즘과 나치즘과 비슷해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무리의 우수성에 빠져 타인들을 배척하고 그 과정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자신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특정 구호들을 만들어 내는 모습과 말이다. 또한 이런 모습은 한국사회에서도 보인다.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들을 일어났다고 하면서 가상의 적을 만들어 내어 위기감을 조성하고 불안감에 떨게 만들며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들의 목적인 표를 얻기위한 공포 정치와 너무 유사하다. 

각설하고 , 결국 잭의 무리는 더 이상 살인에 대한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piggy와 랄프는 방해물인 것일 뿐이다. 그들을 죽이기 위해 섬 전체를 불태우며 수색을 한다. 랄프는 있는 힘껏 살려고 몸서리친다. 죽지않기 위해 최대한 은밀하게 멀리 도망치다 해안가에 닿는다. 그 해안가에는 멀리서 섬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 도착한 해군들이 있었다. 어른인 해군들 말이다.   

작가가 왜 어린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을까? 한번 쯤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설정함으로써 많은 생각들을 던져 준다. 순수함의 상징인 어린아이들이 내면에 잠자고 있는 포악하고, 흉측한  가면을 꺼내 스스로 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써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도록 한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책에서 파리대왕의 얼굴을 빌려 이런말을 한다.
"너도 알지? 나는 너희들의 일부분이야. 아주 밀접하게 가까이 있는 일부분이야. 왜 모든것이 잘 못돌아가고 이모양으로 되었는가 하면, 그건 모두 다 나때문이야" 
잭의 무리가 그토록 찾던 검고 무섭게 생긴 적은 바로 여기 있었다. 우리 근처에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섬안에 있는 모두가 적은 저멀리 어딘가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공격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괴물은 우리 자신이라는걸 몰랐다.

내 안에도 윙윙 거리며 날개를 펼칠 기회를 엿보는 파리가 있을 것이다. 언제든 불안,공포,좌절,고통,분노 등의 감정을 엿보며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파리가 날개를 다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철학적이면서 마주하기 싫은 불편함을 감수해내 한층 성장시킨다. 사람들은 좋은게 좋다고 생각마저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긍정적인 사고라고 포괄지어 범주화 시켜 그 범위안에 숨겨진 진실을 애써 감춘다. 알면 알수록, 진실에 다가갈수록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 거짓임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한번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불편함에 의한 감정이 클수록 성장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파리대왕>은 앞에서 말한것 처럼 인간의 본성, 숨겨진 야만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필자 역시 숨겨진 야만성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읽어 냈지만, 혹자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 낸 야만성이라는 설명을 하기도 한다. 어쨋거나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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