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팅힐

Posted by 티쳐리
2017. 10. 21. 06:00 리뷰/영화 리뷰

영화 <노팅힐>

TV, 인터넷, 컴퓨터 등 대중매체의 발달로 인해 유명스타와 연예인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이에 따라 애착이 가는 연예인이 생기고 한번쯤은 그 또는 그녀와의 사랑을 꿤꿧을 것이다.이런 우리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영화가 노팅힐이다. 영국의 흔한 남자와 유명한 연예인의 사랑이야기를 가슴깊이 새기며 장면들과 노래, 대사 하나하나가 남도록 하는 기묘한 마법을 부린다. 



사랑한다는 것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바로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다. 노래를 들으며 저절로 줄리아 로버츠의 미소를 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런 줄리아로버츠(안나스콧 역)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노팅힐을 보면 죽었던 사랑의 세포가 살아남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 멀리서만 바라보며 사랑을 숨기는 사람, 어제 헤어진 사람, 사랑에 지쳐 사랑을 포기한 사람 등 모두 다시 사랑하고 싶어진다. 
휴그랜트(윌리엄대커 역)는 어수룩한 영국남자의 진실되고도 순박한 사랑을 그 누구보다 잘 표현해낸다. 처음 자신의 서점에서 안나를 만나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아마 모든 이들이 경험했을 사랑의 이야기다.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 자신이 무슨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사람의 관심을 사기 위해 하는 그리고 단지 힐끔이라도 좋으니 눈빛 한번 보기위해 수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그렇게 첫만남은 아쉬움에 젖은채 속으로 눈물만 훔치며 작별인사를 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 자신에게 있어서 우선순위가 뒤바뀐다. 줄리아로버츠는 영화촬영으로 잠시 영국에 머무르던 상태로 몇일 뒤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선택을 바꾼다. 잠깐동안 더 머무르기로. 자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무언가가 뒤바뀌는 순간이다. 아니면 없던 소중한 것이 새로 생겨가는 느낌이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잊고 있었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낀다. 숨죽었던 용기들과 밋밋했던 열정들이 되살아나며 가슴 언저리가 뜨거워지는 야릇한 그 감정을 말이다.

운명적인 사랑

윌림엄 대커와 안나스콧은 서로를 처음 만난 그날, 무언가를 느꼈다. 그들을 감싸고 있던 보이지 않던 운명의 끈이 서로를 휘감아 낚아챘다. 
그 순간을 두 사람은 놓치지 않았다. 서로를 부드럽게 응시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요즘 말로 하면 눈에서 꿀이 떨어졌다. 그리고 주저없는 선택과 망설임 없는 결정을 내린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주변인들과 식사를 하고, 서로를 진정으로 아껴주며 상대방을 헐뜯는 사람을 혼내주며 사랑의 깊이를 키워나갔다. 일은 술술 풀리는 듯 했으나 안나스콧의 남자친구가 찾아오면서 관계는 꼬여간다. 알고보니 안나스콧은 연예인 남자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대커는 자신이 룸서비스 직원이라고 속이며 둘의 관계는 그들이 서로 떨어진 거리처럼 자연스레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던 어느날 다시 대커의 집에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보니 안나스콧이 울며 자신의 당황스럽고 억울한 감정 상태를 감추지 못하고 들어온다. 

사랑할 때 자존심은 버려야한다

영화를 보면서 류승범의 말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존심 때문에 헤어지지 마세요. 사랑은 독약일뿐이구요." 처음 안나와 대커가 멀어지게 된 이유도 자존심때문이었다.
안나는 유명 스타라는 자존심때문에 진실하지 못했고, 대커는 속은듯한 기분에 나빠진 상처입은 자존심에 솔직하지 못했다. 그 둘은 서로의 잘못을 깨닫고 자존심을 버리기기로 한다. 

먼저 안나. 그녀는 젊은 시절에 찍은 나체사진으로 온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상처입는다.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 등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조차 꺼리지만 대커만큼은 예외였다. 상처입은 마음에 수치심과 자존심을 버리고 대커를 다시 만나러 온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자신의 수치를 숨기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으로 인해 이 사람이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더 커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나는 큰 용기로 결심하고 다시 사랑을 이뤄낸다. 
그것도 잠시 둘의 사이는 대커의 룸메이트로 인해 세간에 알려지며 다시 또한번 상처를 입은 안나는 자신의 문을 닫아버린다. 

대커. 그녀가 다시 찾아왔다 자신을 떠났을 때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같아서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렇게 그녀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가 항상 그의 마음에 남아 있어 그는 다시 한번 자존심을 접고 용기를 내어 그녀를 찾아가본다. 어떻게든 멀어져 있는 사랑을 붙잡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촬영장으로 찾아간 그는 안나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다시 빠져든다. 그것도 잠시, 이어폰을 통해 안나가 자신을 비꼬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상처를 받고 안나에 대한 마음을 접기로 한다.

안나. 영화촬영이 끝난뒤 대커를 찾지만 대커는 이미 사라졌다. 대커를 찾아 서점으로 들어서며 다시 한번 용기를 낸다. 하지만 대커는 의외로 단호했다. 마치 더이상 자신에 마음에 안나를 위해 내어줄 공간을 만드는 것은 사치라는 것을 체념한듯이.. 안나는 마지막으로 말을 하고 쓸쓸히 떠나간다.
"잊지말아요. 나도 그저 여자라는걸. 한 사람 앞에서서 사랑을 바라는.."
"Don't forget. I'm also just a girl, standing in front of a boy, asking him to love.."

대커. 안나의 말을 듣고 잠시 기분이 멍해진다. 이내 친구들을 만나 사실을 털어놓는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그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느끼고 이제야 진정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그리고 안나를 찾아 떠난다. 안나가 머물기로 한 마지막날 영화촬영장에서 인터뷰가 있었다.
"안나, 언제까지 영국에 머무실건가요?" "오늘밤 떠나요" 
대커는 가까스로 인터뷰장에 들어온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이 실수를 깨닫고 무릎을 싹싹빌테니 생각을 돌려줄수 있는지 말이다. 자신이 정말 잘못했고 용서해주기를 바라며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은 잊혀지지 않는다.  

안나. 기자에게 다시 자신에게 질문해주라고 한다. " 안나 , 언제까지 영구에 머무실건가요?" "영원히요" 

이렇게 둘의 사랑은 자존심으로 잠깐 멀어졌지만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전율을 느끼며 몸에 소름이 돋기도한다. 정말 잊지못할 명장면이다. 서로 환한 웃음으로 사랑을 표현하는데 그보다 행복해 보일 수는 없다.

이처럼 아무리 운명적으로 사랑이 찾아오더라도 자신의 섣부르고 서투른 선택으로 진실한 사랑을 잃을 수 있다. 특히나 자존심이란 악질은 더 그렇다. 
나중에 사랑을 하게 된다면 이 장면들을 깊이두고 곱씹어 보리라 다짐하게 된다.
사랑에 지친 사람. 사랑이란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은사람은 두고두고 돌려보게 되는 영화다.  


'리뷰 >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부3  (0) 2017.10.24
영화 대부2  (0) 2017.10.22
< A.I. 에이 아이 > 리뷰  (0) 2017.10.18
『나비효과1』감독판 리뷰  (0) 2017.10.17
존경과 우정으로 뭉친 시실리인 마피아영화 『대부Ⅰ God Father』  (0) 2017.10.15

채식주의자(한강)

Posted by 티쳐리
2017. 10. 20. 06:00 리뷰/책 리뷰

채식주의자(한강)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총 3개의 스토리를 한데 이어묶은 작품이다.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 순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시간순서대로 일어난 사건들이다. 다만 전개되는 과정에서 서술하는 인물의 관점이 바뀐다. 마치 이야기들이 서로 독립적인 이야기인 것 같지만 하나로 묶일 수 있는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야릇한 성적욕망

<채식주의자>는 성적욕망의 분출과 발현을 야릇하게 그려낸다. 이런 성적욕망은 사건의 시발점과 절정의 순간 어김없이 찾아온다. 먼저 주인공 영혜의 남편의 시점으로 서술된 (채식주의자)에서 시작된다. 영혜 남편은 아내보다 수수하지만 눈이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영혜의 언니에게 관심을 갖는다. 음식 솜씨, 생계를 꾸려나가는 강인함, 많은 애교를 지닌 처형을 말이다. 그런 언니를 아내로 둔 동서를 부러워하며 속으로는 처형(영혜언니)을 갈망한다. 시선은 이제 처형의몸매로 들어서게 되고 그녀의 모든것에 더욱 끌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것은 장기간의 금욕으로 인해 나타나는 일시적인 탐욕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시적인 탐욕이 아닌 인간이라면 내재된 성적욕망의 분출을 보여주는것 같다. 아내 영혜와의 관계에서 느껴지지 않는 그 무엇, 생존과 생식욕구를 벗어나 만족감과 충만감을 느껴야 하는 그런 성적욕망을 소극적으로 표현한다.

영혜 남편이 소극적으로 내재된 성적욕망을 분출했다면 다음 장인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언니의 남편(그)의 시선으로 적극적으로 분출한다. 
어느날 그는 아들을 씻기다가 우연히 몽고반점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한다. 아내의 동생(영혜)에게도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사실에 귀를 쫑긋세운다. 그 뒤로 몽고반점이 그려진 처제의 몸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상상은 점차 심해져 영혜와의 관계를 갈망한다. 그가 영혜를 우연히 만나고 온 날 밤,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잠을 자는 아내를 덮친다. 그러나 자신이 느낀 욕망을 채우려하면 욕망의 만족은 눈앞에서 금방 사라져버린다. 그러던 어느날, 영혜의 집에 찾아간 그는 영혜의 나체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그녀를 탐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작전을 펼친다. 자신의 미술적인 재능을 앞세워 영혜의 순수한 마음과 심리를 이용한다.  그는 그녀의 몸에 정성껏 바디페인팅을 하여 꽃으로 만든다. 그리고 자기 자신 역시 바디페인팅으로 치장한다. 서로의 몸이 엉켜들어가며 그는 욕망을 표출한다. 몽고반점을 핥으며 잠이든다. 
결국 그는 자신이 원하던 욕망을 달성한다. 그리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 자살마저 쉽게 할 수 있으리라 만족해한다. 겉으로는 예술활동이라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정작 자신의 성적패티쉬를 포장하여 해결하는 과감함이 두드러진다. 

서로 다른 두 남자의 시선에서 각각 영혜와 영혜언니를 탐욕하는 미러링, 쌍방구조가 인상깊다. 채워지지 않는 성욕이 우리 안에 내재되 있고 그것이 밖으로 분출되는 양상만 다를뿐 같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스스로 통제하고 사회적금기라는 사항으로 조절하고 있지만 언제든 터져나올 수 있는 그리고 부족함을 채워달라고 외치는 본성을 보여준다. 




온몸으로 받아 들이는 평화주의자 : 영혜

주인공 영혜는 어느날 육식에 대한 꿈을 꾸고나서부터 육식습관을 거부한다. 게다가 마치 자신은 원래 그랬다는 듯이 자신을 구속하고 묶어두는 것들을 거부한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집착한다. 그녀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상의를 벗고 집안에서 활보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언니의 집들이겸 친정식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사건은 터지고 만다. 영혜는 준비된 음식에 손조차 대지 않으며 육식거부를 계속한다. 그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못마땅해하던 아버지가 결국 화를 낸다. 억지로 그녀의 입을 벌려 힘으로 꾸역꾸역 고기를 집어 넣는다. 그러자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괴로움에 죽을 죄를 진거 마냥 소리치며 칼로 손목을 긋는다. 

영혜는 육식을 먹는 것을 동족살인 처럼 여기고 피했다. 그녀에게는 물과 햇빛이면 충분해 보였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한것은 왜그럴까? 그녀의 심리는 무엇일까? 그녀의 다음과 같은 말에 잘 나타난다. 
"내가 믿는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 세치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그녀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스스로 구속과 억압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쫒았다. 예전의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로 파괴되었던 것들을 돌려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든 사람처럼 말이다. 그녀가 폭력적이라 생각하는 행동들을 모두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언가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씹어먹는 행위, 크고잦은 몸짓들, 그리고 밖으로 뱉어냈던 수많은 말들을 삼켜버린다. 그녀가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을 구속하던 외부로부터 탈출하여 자신이 정한 구속과 억압에 맞춰가는 것이다. 몸을 죄어오던 옷을 벗고 온몽으로 바람과 햇살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사람을 벗어나 바디페인팅을 통해 완벽한 식물의 모습이 되었을 때 누구도 채워주지 못할 황홀감에 젖어들었다. 그녀는 식물이 되고자 했던것이다. 식물은 자기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 낼 뿐, 동물처럼 무언가를 섭취하여 영양분을 얻지 않는다. 즉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고 피해를 입힐 염려가 없는것이 식물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식물로서 새로운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세상을 살아본적이 있는가?

남편과 동생의 불륜관계를 목격한 그녀는 이런 말을 던진다. 
"문득이 세상을 살아본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건 오래전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다." (나무불꽃,197p)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 처참했다. 왜 자신은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왜 내인생은 이럴까. 깊은 절망과 힘든 현실에 좌절하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녀의 회환에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눈을 지긋이 감고 생각해봤다. 나는 삶을 살아온 것일까? 그냥 견뎌온 것일까? 이 삶이 내 삶일까? 다른 사람의 삶을 뒤쫒아 옆에 걸었던 것은 아닐까? 내것이 아니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견뎌내는건 아닐까? 살아왔다는 것과 견뎌왔다는 것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짚어내는 날카로움에 경탄했다. 그녀의 날선 시선이 절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날카로움에 찔리고 나서야 삶을 되돌아 보았다.

살다보면 내가 사는게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겼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때가 많다. 살아가는 것에는 진취적으로 자기가 앞으로 걸어나가지만, 흘러가는 것은 단지 흐름에 얹혀 이리저리 방황할 뿐이다. 눈을뜨고 내가 살아간 날 수를 세어보며 달력에서 숫자를 지워나간다. 많은 숫자가 아직도 남아있다.
눈을 감고 묵묵히 답한다. 오늘부터 내삶을 살아가리라. 삶은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이뤄내는 것이고 견뎌져야할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리라고 다짐한다. 




< A.I. 에이 아이 > 리뷰

Posted by 티쳐리
2017. 10. 18. 06:00 리뷰/영화 리뷰

영화 < A.I. 에이 아이> 리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이시대의 주요 관심사가 되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전반에 융합되어 나타나는 혁신적인 변화들을 말한다. 특히나 경제적인 영향력, 사회문화적인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런 4차산업혁명의 모습이 잘 반영된 미래를 표현한 영화가 바로 <A.I.> 에이 아이다. A.I는 Artificial Intelligence 의 줄임말로 ,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자연이 선사해주는 지능이 아닌 인간이 조작을 통해 인간다운 인간적 지능을 만들어낸 것을 말한다.   



<A.I>의 포스터를 보면 한 꼬마와 그에 대한 설명이 보인다. 데이빗은 11살이고 몸무게는 60파운드(약27kg)고 키는약135cm정도 그리고 갈색머리를 지녔다. 그의 사랑은 진실하나 그는 아니다. 꼬마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거 처럼 보인다. 


에이아이의 배경은 지구의 환경이 오염되어 파괴되면서 기온이상현상, 인구과잉 ,식량 부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구는 많은데 식량은 부족하게 되면서 식량이 필요없는 로봇을 생산하게 된다. 목적에 맞는 로봇들이 만들어지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공지능이 탑재되는 로봇들이 출현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로봇들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지며 꼭 필요한 존재들이 되어간다. 주인공 데이빗도 그 중 하나이다. 

영화는 데이빗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가족과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들을 던진다. 그리고 질문을 하게 만들고, 생각해서 해답을 스스로 찾게끔 우리를 이끌어준다.


"아드님은 과학의 힘이 아닌 부인의 기억속에 있습니다"

식물인간이 된 마틴(아들)을 보고 희망을 품은채 지극정성 돌보는 모니카(엄마)를 보며 마틴을 돌봐주는 의사가 한 말이다. 식물인간이 되어 움직이지도 먹지도 못한 채 누워서 호흡기에 의존해 숨쉬기만을 할 뿐인 아들을 엄마는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다. 매일 병원으로 와서 하루하루 책을 읽어준다. 아들이 듣는지 듣지 못하는지는 엄마에게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그저 숨쉬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모든 부모님의 모습이 이러지 않을까? 부모님의 내리사랑에는 끝이 없고 그 근본에는 희생정신이 있다는 것에 슬펐다. 사랑중에 가장 위대한 사랑이 있다면 바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일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아니 확신한다.  


인간의 폭력성은 내재되 있는 것인가?

데이빗의 존재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데이빗의 생김새는 우선 어린 아이의 모습과 다를게 없다.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에서 손,발,머리 그리고 섬세한 부분인 눈동자, 머리카락 등 똑같다. 다른게 있다면 생리적기능을 조절하는 소화기관, 호흡기관 과 같은 내부장기들이 없을 뿐이다.
이런 데이빗은 자기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성향을 보인다. 마치 그렇게 프로그래밍 된거 처럼 말이다. 
하지만 데이빗을 만든 개발자는 데이빗에게 따로 폭력성이라는 것을 주입시키지 않는다. 인공지는을 탑재하고 그리고 다른 로봇과는 다르게 어린 아이의 마음을 이식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데이빗의 폭력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폭력이 학습된다는 말이 있지만 데이빗의 경우에는 학습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환경조차 제한적이어서 학습으로 인해 생겨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쩌면 단지 인간다움이라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마음만을 이식했을 뿐인데 이런 공격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인간자체에 폭력성이 내재되 있다는 방증일 수 있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가끔 이런말을 하거나 듣곤한다. "아이고 이 인간아. 사람먼저 되라." 상대방에게 이런 말을 할때면 우리는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이말을 듣는 입장이면 기분이 언짢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어도 있다. "인인인인인(人人人人人)" 뜻을 해석하자면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이처럼 우리는 같은 인간인데 마치 다른 인간이라고 취급한다. 왜 다르게 생각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 곧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을 규정하는 인간성에대해 생각해 보아야 겠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깊고도 복잡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영화는 우리에게 스스로 답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데이빗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성에 대해 고찰해보고 인간적이다와 비인간적이다의 경계를 캐묻는다. 과연 인간적이다는 인간성은 무엇일까? 
공동체 선을 향한 이타적 행동, 생존욕구,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오는 소리로 부터 목적,목표를 설정하고, 희망을 꿀 수 있고, 자아의식, 자기결정능력 등을 인간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데이빗은 인간인가? 
이런 것이 인간성이라면 데이빗은 인간성을 지녔다고 할 수있다. 그리고 인간성을 지녔으므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모니카가 데이빗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잘 이해가 된다. 데이빗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록 모니카는 감정에 혼란이 온것처럼 행동한다. 마치 인간의 진짜와 가짜가 있고 그 경계가 무너지는 자리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을 온몽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듯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고 눈물까지 흘린다. 

우리 앞에 데이빗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영화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데이빗을 인간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꺼려한다. 단지 그는 자연잉태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품들의 덩어리라는 생각이 데이빗의 인간성을 넘어서 사람들의 판단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것이다. "인간다워야 인간이지"라고 외치면서 정작 인간다움을 가진 로봇은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도덕적 윤리적 잣대로 구분하는 인간성을 지닌 것만으로는 인간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남아있다. 

싸이코패스,연쇄살인마 등 vs 데이빗

신체구조는 사람과 같은 유기체지만 사회의 악같은 존재들과 신체구조는 기계지만 사회.도덕,정서적 인간성을 지닌 로롯이 있다고 가정하자. 어떤 것을 더 인간답다고 생각하고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몇몇 사람들은 전자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들이라고 말하기도한다. 다른 몇몇은 죄값을 치뤄야 할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래에 정말 데이빗과 같은 것이 만들어 지고 우리 사회안에서 위와 같은 선택을 해야한다면 나는 고민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신체적유기체가 인간의 조건이라기 보다는 사회,규범,도덕적인 인간성이 더 인간이 되기위해서 더 큰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이 발전하는 사회가 온다면 유기체가 아니라는 이질감은 잠시뿐 일 것이다.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인간과 인간이 아닌것을 나누던 기존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새로운 인간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일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전자들이 사라진 사회가 오면서 더 살기좋고 인간다운 나라가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끝 "You're so unique. so special" 

영화속에서 세상의 끝은 맨하튼이다. 물속에 잠긴 맨하튼도시에서 데이빗은 자신이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여 자살을 택한다. 이같은 것을 보면 세상의 끝 맨하튼은 어쩌면 현실세계의 끝을 의미도 하겠지만 데이빗의 세계의 끝을 의미하는거 같아 보인다.
2천년이 흐른 뒤 미래 외계생물체에 의해 데이빗은 되살아 난다. 그리고 그들은 "너는 정말 특별한 존재야"라고 데이빗에게 말한다. 그들은 데이빗에게서 과거 인간의 모습을 탐구할 수 있기에 (마치 우리가 이집트 문명의 미이라같은 것을 살펴보며 고대문명에대한 의미를 탐구하는것 처럼) 그런 말을 한것이다. 
외계생물체에게 있어서 데이빗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다. 외계생명체들이 인간의 전형 데이빗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인간다움과 인간이 무엇인지 쉽게 말하지 못하겠다. 


『나비효과1』감독판 리뷰

Posted by 티쳐리
2017. 10. 17. 06:00 리뷰/영화 리뷰

<나비효과1 -Butterfly effect 1> 감독판 리뷰 

타임리프, 타임슬립류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영화가 있다면 나비효과라고 생각합니다. 

잠깐! 타임슬립영화와 타임리프영화가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흐르는 시간인데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 사건이 진행되 영화를 말합니다. 

포스터를 보면 남자 잘생긴 배우(애쉬튼 커처-에반 역)와 예쁜 여배우(에이미 스마트-캘리 역)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가운데 문구 하나가 보인다. 

"하나를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뀐다" 의미심장한 문장이다.

나비효과는 먼저 개봉한 극장판과 후에 나온 감독판의 결말이 다르다.  차이를 한단어로 표현하면 극장판은 아련하고, 감독판은 충격적이다.



Butterfly Effect: 나비효과, 나비의 작은 날개짓 한번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만들 수 있다. 

"It has been said that something as small as the flutter of a butterfly's wing can ultimately cause a typhoon halfway around the world." - chaos theory   

영화는 카오스이론을 소개하며 시작합니다. 뜻을 해석해보면 , 다음과 같습니다. "나비의 날개짓 처럼 작은 행위가 지구 반대편에는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 남자가 누군가에게 쫒기는듯 굉장히 다급하게 몸을 숨긴다. 초반부터 빠른 비트의 음악과 거칠고 헐떡이는 숨소리가 보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주인공 에반은 어릴적부터 기억을 잃는 증상을 앓는다. 잦은 부분기억상실때문에 엄마는 에반을 의사에게 데려가 조언을 구한다. 의사는 스트레스성에 의해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최대한 오늘 하루 자신이 무엇했는지 기록해보라고 권장한다. 에반은 그 이후 부터 기억을 잃기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차례대로 써나간다. 그가 기억을 잃은 부분들은 모두 그에게 중요한 사건들이 되어간다.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자신의 목을 졸라 자기를 죽이려 했던 기억, 캘리의 집 지하에서 옷을 벗고 비디오를 찍고 있는 장면들, 다이너아미트 사건, 키우던 크로켓의 죽음 등이 그렇다. 


위험한 사건들에 계속 노출되는 아들을 잃고 싶지 않아 엄마는 이사를 결심한다. 결국 에반은 켈리와 떨어지게 되고 그 후 기억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진다. 에반은 기억을 잃는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아 좋아하지만 그것도 잠시 예전에 일기장을 들춰보다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꿈을 꾼다. 에반은 그것이 꿈인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고향에서 옛 친구 레니를 만나 자신이 일기장을 통해 겪은 것은 꿈이아니라 잃어버렸던 과거의 기억임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자신이 사랑했던 켈리가 그와의 오래간만의 만남이후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한다. 에반은 어떻게든 과거를 돌려보기 위해 일기장을 읽으며 시간여행에 전진한다.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겪고 잃어버렸던 기억들의 조각들을 새롭게 맞춰나간다. 과거로 가서 새로운 조각을 맞출때마다 현실에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된다. 자신이 사랑하던 켈리가 살아 돌아와 자신과 행복한 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에반은 이 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켈리의 오빠 토미가 에반을 찾아온다. 에반은 결국 폭력적인 토미를 저지하다 분노를 못이겨 죽이게 된다. 과거를 바꾸면 행복할 것만 같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감옥에 간 에반은 강간도 당하고 온갖 치욕을 겪는다. 그러다 예수를 믿는 친구의 도움으로 다시 한번 시간여행을 한다.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려 새로운 조각을 맞췄지만, 돌아오는건 사랑했던 연인이 창녀가 되고 친구는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현실이다. 


자신의 비참함을 견딜 수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몰락과 친구의 고통을 못견뎠던 에반은 다시 과거를 바꿀 결심을 한다. 과거로 돌아간 에반은 자신이 직접나서서 사건의 종지부를 찍는다. 눈을 떠보니 자신은 팔다리가 없는 불구가 되어있고 켈리와 레니는 연인이 되어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자신이 한때 사랑한 사람과 믿었던 친구가 연인이 되고 자신은 그 사이에 껴서 동정을 팔아먹는 존재가 됐다는것에 말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일을 겪은 뒤 그정도의 아픔은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불구가 된 모습에 힘들어하던 어머니가 결국 폐암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많은 선택을 했지만 돌아오는것은 누군가의 파멸과 불행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존재자체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태아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탯줄로 목을 감아 자살을 하고만다. 

결국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에반을 뒤로하고 , 캘리와 토미는 학대하는 아버지를 떠나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고 건강하고 밝은 사람으로 자라게된다. 친구 레니 역시 새로운 친구들과 화목하게 지낸다. 에반의 엄마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새삶을 시작한다. 



내게 과거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선택으로 미래의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면?

내가 과거를 바꿀 힘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과거에 후회나 미련을 갖기 마련이다. '그때 이렇게 했으면 달라졌을텐데' '아 그거 미리 해둘걸 왜 이제와서 후회하고 있는지 아쉽다' 등등.. 나 역시 후회를 하곤 한다. 한발 늦은 선택과 주저했던 망설임, 그리고 성급했던 결정들에 대해서 말이다.

모든 사람이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자신의 실수와 과오들을 많이 바꾸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다른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면 어떨까? 선택은 쉽지 않을것이다.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이미 잘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의 이기심 때문에 무언가 바뀌게 되는데 어떤 결말이 이뤄질질 모른다면 선뜻 하기 어려울것 같다.
호기심에 한번은 바꿔봣을거 같긴하다. 하지만 그결과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나도 에반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에반은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주위사람들, 사랑했던 연인,친구들 중 누군가 행복해지는 대신 다른 누군가 불행해져이음을 계속 겪었다. 자신의 선택때 마다 모든것이 잘못됬다는 깊은 후회도 함께 느꼈다. 에반이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선택에 대한 깊은 고뇌와 갈등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다 태아때로 돌아가 자살을 선택했다. 사실 그것은 선택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어 버리는 행위이며, 인생을 살아가며 있을 수많은 선택조차 차단해버린 것이다. 

결국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바꾼다는것은 사치에 불과하며, 지금 현실에 집중하라는 영화속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왔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나의 선택의 누적분이 나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희생이 있어야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영화 마지막에 토미가 이런 말을한다. "희생이 있어야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보는 순간 너무 씁쓸했다. 영화속에서만 보더라도 토미의 행복한 삶의 근원에는 에반의 희생이 있어야만 했다. 정말 희생이 있어야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것일까?


영화는 전반적으로 괜찮았지만 흘러가는 스토리가 마치 결과는 에반의 죽음으로 정해져있었다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불편했다. 이세상 살아가는 것의 목적이 행복인데 정작 자신은 행복하지 못한채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남의 행복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말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세상사람 모두 행복해 질 수는 없는것일까? 그런 구조를 만들어낸 사회에 문제가 있지않을까? 

마지막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울리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영화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는 사실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런 느낌에 큰 방향성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잘 나타내 준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집착하기 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로서 말이다.

"현재가 즐겁지 않다면 그 어느곳에도 즐거움은 없다. 하던 일을 바꾼다 한들 새로움은 잠시뿐 기대감은 또 다시 실망으로 변한다. 다른 곳을 향한 시선을 거두어 여기에 주목하라. 즐거움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다산 정약용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버튼 한번 눌러주시면 포스팅에 큰 도움이 된답니다.

참고로 공감은 공짜입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언제든지 댓글은 환영입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중국신화전설2』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는 사실들

Posted by 티쳐리
2017. 10. 16. 06:00 리뷰/책 리뷰

『중국신화전설2』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는 사실들


<중국신화전설2> 단지 중국만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신화,전설,역사 이야기가 아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흥미가 계속 생긴다. 지리적으로는 중국이 우리나라에 밀접해 있으면서, 역사적으로는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세계사와 윤리,도덕,문학 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더욱 더 친밀함을 느낄 수있다. 앞에서 살펴본 <중국신화전설1>이 자연현상을 중국풍의 신화,전설 이야기로 승화시키며 동양의 그리스로마신화 같은 느낌이 강했다면, <중국신화전설2>는 친근한 이야기들과 인물에 대해 서술하는 측면이 강하다. 깊이 읽지 않더라도 한번쯤 들어 봤을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고사성어,사자성어의 어원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1.교과서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이야기

공자,노자,묵자,진시황제 등 살면서 한 번쯤은 꼭 들어봤을 인물들이다. <중국신화전설2>는 이들에 대한 비화,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숨겨진 스토리들이 많이 나온다.

먼저 공자, 공자라하고 하면 우리는 친숙하다. 무엇을 했는지 잘 몰라도 성인이라는 것은 얼추 알고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때 윤리를 배운 사람이라면 공자는 유가사상(유교)의 중요한 인물로 배우곤 했다. 더 들어가면 공자는 인(仁)과 의(意)를 중요시 했다고 알고있다. 교과서에서는 이렇게만 가르친다. 그가 중요시한 사상의 핵심은 무엇이고 인의(仁義)사상이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는지 말이다. 교가서에서 배움도 중요하지만 당시에 이런 글을 접했다면 더욱 배움의 재미를 느꼈을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한다.

공자는 춘추시대 사람으로 키는 한길 만치 크고 호랑이 처럼 넓은 가슴팍과 곰처럼 넓은 등을 가진 거구에다가 힘이 무척이나 쌧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역시 10척이나 되는 거인에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이야기의 과장적인 부분을 고려하더라도 공자 집안은 유전적으로 풍채가 우월했던거 같다. (1척은 약 30cm이고, 10척이면 3m다. 한길 역시 3m 정도된다). 학문적으로 뛰어나 매일 앉아 책만 읽는 공부벌레 처럼 생겼을 줄 알았었는데 굉장한 반전이었다. 또한 그는 지금 처럼 평판이 그렇게 높고 모든이에게 추앙받는 인물은 아니였다고 한다. 박학다식하고 덕망은 높았으나 제대로 된 관리직에 올라서보질 못했다. 항상 어지러운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하여 훌륭한 군주를 찾아 중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야만 했다고 한다. "너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했던 인물이 당시에는 공자가 아닐까 싶다.

성인으로 알려질 만큼 뛰어난 공자를 말로 이길자가 없어 보이는데 젖내조차 가시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난처했던 적이 있다. 그 꼬마는 7살정도 나이로 이름은 항탁이다. 간단히 이야기를 소개하면 공자가 꼬마아이에게 아무리 질문을 하여도 항탁은 막힘없이 청산유수처럼 대답을 했다. 그러다 항탁은 '이제 제가 몇가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질문을 던졌다. 공자는 궁리 끝에 궁색한 답변을 하였다. 하지만 몇번씩 대답은 틀렸고 공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그래. 이 나이가 되어서야 이제 알겠구나. 후생가외(後生可畏)로다" 여기서 바로 젊은후학을 두려워할만 하다는 뜻의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묵자가 있다. 묵자의 사상의 핵심은 겸애와 평화,박애다. 묵자는 비교적 친숙하지 않을 수 있으나 춘추전국시대때 공자와 쌍벽을 이루던 사상가다. 묵자와 관련한 이야기로는 공수반(노반)과의 얽힌 일화가 있다. 공수반은 손재주가 뛰어나 구(갈고리)와 거(밀어내는기구), 성을 쉽게 함락할 수있는 구름사다리 등을 만들어 초나라 왕에게 바쳤다. 초나라왕은 이것을 가지고 송나라를 공격할 계획이였다. 하지만 묵자가 나타나 송나라에 대한 공격을 멈추어달라고 하면서 공수반과 군대를 상징하는 나무토막들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고 모의전쟁을 시범보인다. 어찌된 영문인지 공수반이 공격하면 항상 계획이 틀어지고 가지고 있던 나무토막갯수도 계속 줄어갔다. 반면 묵자가 가진 토막은 멀쩡하여 결국 공수반의 침공계획은 실패로 모의전쟁은 끝이난다. 이처럼 묵자는 성을 공격하기 보다는 성을 지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전파하는데 힘썼다. 방어력을 높임으로써 무고한 희생을 최소화하고 전쟁이 잃어나지 않는 방향을 추구했던 것이다. 적극적으로 세상일에 누구보다 발벗고 나서 노력했던 사람이 묵자란 사람이다. 

이런 공자와 묵자는 후대에 신선의 도를 닦아 선인(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전해진다. 그들이 모두 "은둔한 선인"이야기를 가지고 끝맻게 되는 이유는 스승을 향한 후대 사람들의 존경과 애정이 담긴것이 아닐까 싶다. 신선이 됨으로써 인간의 불완전성, 실수, 과오등을 씻겨주려는 배려의 행위들이 아니였을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2.교훈을 주는 친숙한 이야기들 과 재미난 사자성어(고사성어)들 

양치기소년이야기와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주나라 유왕과 포사 이야기(봉수대이야기)가 있다. 주나라 유왕은 음탕,방탕하고 향락적이고 주색잡기를 좋아했다. 그런 인물 곁에는 항상 절세미인이 나타나는데 포사가 그러했다. 절세미인이였던 포사는 웃을 줄 몰랐다. 매일 침울한 표정을 보이고, 쓸쓸해 보였지만 그 모습에 유왕은 더 끌렸다. 하루는 유왕이 포사를 어떻게든 웃겨보려고 수많은 광대를 대대적으로 모집했지만 포사는 웃지않았다. 고민끝에 유왕은 봉수대에 봉화를 올리어 큰 북을 치게하였다. 1개의 봉수대에 불,연기가 올라오자 다른 봉수대들도 서둘러 봉화를 올렸다. 각지의 제후들은 도성에서 전해온 봉화를 보고 왕에게 무슨일이 생긴줄 알고 얼른 군대를 끌고 달려왔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도성에는 아무일이 없었다. 제후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왕에 대한 불만을 서로에게 풀었다. 수레들이 서로 부딪히고 넘어지고, 장군들이 서로 헐뜯고 싸우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때 포사가 그 모습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유왕은 포사의 웃는 모습에 말할 수 없이 즐거워졌다. 그래서 포사를 웃기고 싶을 때마다 봉화를 올리게 했다. 그러나 속는것도 한두번, 제후들은 봉화가 올라도 찾아오지 않았다. 마침내 여자에 미쳐 웃고떠들던 유왕에게 반란의 위기가 찾아왔다. 그순간 급하게 봉화를 울렸지만 아무도 구하러 나타나지않았다. 그렇게 유왕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주나라 이전 하나라 걸왕, 은나라 주왕 등 왕조가 멸망한 시점에 비슷한 일들이 항상있었다. 왕은 국정에 신경쓰기 보다 주색잡기에 빠져 여자와 술을 날마다 놓지않고 즐겨댔다. 그러다 결국 비슷한 패망의 길을 걸었다. 어질고 현명한 임금의 시대도 있었지만 이처럼 어리석고 부족한 왕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는 것이 쾌락이라는 사실은 고금을 떠나 어디든지 존재하는것 같다. 몇백년이 지난 후대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이야기도 그렇다. 이와 관련해서는 동시효빈(東施效顰)이라는 재미난 사자성어의 어원도 함께나와 읽는 즐거움이 크다. 오나라의 근접한 월나라 왕은 자신의 치욕적인 패배를 복수하기위해 항상 칼날을 다듬어 왔다. 그러다 기회를 틈타 오나라 왕이 여자를 밝힌다는 것을 알고 미인계로 현혹시키는 작전을 펼친다. 사전에 월나라 왕은 전국에 절세미인을 찾아다니는데 '서시'라는 시골에 살던 미인을 발견한다. '서시'는 본래 몸이 약해 아플때마다 가슴을 움켜쥐고 눈썹을 찌푸리는데 , 보는 사람들로하여금 애처로운 마음이 들어 그런태도가 아름다움을 더해줬다. 그런데 동쪽에 이웃마을 못생긴 처녀가 자신도 '서시'못지 않게 아름답다 생각하며 눈썹을 찡그리는데 가히 흉물스럽고 더욱 못생겨 보였다. 이때 나온 말이 바로 '아름다움은 타고나는 것이지, 절대로 못생긴 사람이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뜻의 동시효빈이다. 이 말처럼 서시의 아름다움은 능할 여자가 없었고 결국 오나라왕은 미인계에 넘어가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게 되었다. 

이밖에도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있고 그 일화들 안에 얽혀 재미난 고사성어들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3. 진시황과 관련된 숨겨진 일화들(알고있으면 잊지못할)

진시황제는 다들 한번씩 들어봤을 것이다. 거대한 묘지를 남기고 한시대를 휩쓸고간 영향력있는 인물이다. 그를 소재로한 미이라와 같은 영화들도 많이있는데 그와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책에 잘 나와있다. 만리장성에 대해서는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만리장성과 관련해 진시황과 맹강녀의 이야기가 있다. 
피과 울음소리로 난무하던 혼란의 시대를 통일한 뒤 진시황은 북방 민족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위해 북쪽에 만리에 이르는 거대한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건설현자에서는 그 1리를 지을 때마다 1사람의 목숨을 바쳐야 견고하고 튼튼하게 지어질 수 있다는 낭설이 돌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희생양이 될까 두려워 모두 기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만희량'이라는 사내가 만명의 목숨과 맞먹는다는 풍문이 퍼졌다. 풍문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만희량이라는 젊은이를 찾아 나서는데 만희량 본인은 어리둥절해하며 도피생활을 한다. 그러다 불쑥 담을 넘어 어느 한 민가에 숨게되는데 거기서 '맹강녀'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 둘은 결혼을 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지만 결국 만희량은 발각되어 끌려가게된다. 맹강녀는 억울하게 잡혀간 남편을 구하러 장성 건설현장에 찾아간다. 맹강녀가 남편을 찾으러 가는길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온갖 고난을 겪고 찾아 가는데, 남편의 죽음 사실을 알게된다. 너무 슬픈 나머지 구슬피 울고있었는데 순간 장벽 한 부분이 무너졌다. 때마침 만리장성을 순행하던 진시황이 이 사실을 알고 무너진 원인인 맹강녀를 잡아 오도록한다. 진시황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홀딱 반해 아내로 삼으려고 술수를 부린다. 맹강녀는 3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다 들어준다면 시집을 가겠다고 약속한다. 첫번째, 장벽너머 높은 구름다리를 설치해줄것. 둘째, 사방10리 크기로 거대한 남편의 묘를 만들어줄것. 셋째, 황제를 포함해 만조백관(조정의 모든 벼슬아치들)이 남편의 묘에 제사를 올릴것. 진시황은 유일무이한 황제로서 수치스러웠지만 미모가 빼어난 맹강녀를 놓치고 싶지 않아 조건을 다 들어준다. 진시황은 다시 맹강녀를 찾는데, 맹강녀는 남편의 묘가 보이는 구름다리 끝에서서 진시황 앞에서 욕과 저주를 퍼붓고 결국 사랑했던 남편을 따라 절벽으로 뛰어든다. 진시황은 맹강녀를 구하러 병사들을 보냈지만 찾지 못하고 부끄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힘없이 궁으로 돌아왔다. 

어리석은자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현명한자는 역사를 통해 배운다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지만, 현명한 사람은 역사를 통해 배운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신화전설은 역사와 경계가 모호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허구도 아니다. 이야기의 사실성을 떠나 배울점이 많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고전을 읽는 묘미는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을까. 몇몇 고전처럼 마냥 딱딱한 문체가 아니고 이야기 형식이라 읽기도 수월하다. 중국 역사에 관심이 많고 중국 여행,관광을 한번쯤 꿈꾸고 있다면 접해봐도 좋을 책이다. 그리고 교과서를 떠나 배움을 넓히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버튼 한번 눌러주시면 포스팅에 큰 도움이 된답니다.

참고로 공감은 공짜입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언제든지 댓글은 환영입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